블랙홀 주변으로 소용돌이치는 물질들이 주황색 원반을 이루고 있다. 물질들이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다가 서로 마찰하면 강력한 빛에너지가 분출된다./ESA

우주가 탄생한 직후 모든 물질을 빨아들이던 블랙홀에서 엄청난 빛이 폭발한 순간이 포착됐다. 워낙 오래 된 일이라 빛 자체도 희미해졌지만, 그 사이 우리 주변에 밝은 별들이 많이 생겨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기보다 힘들었던 일이다. 과학자들은 우주의 아기 시절 모습을 통해 초기 우주의 격변 현장을 더 자세히 밝힐 수 있다고 본다.

유럽우주국(ESA)은 "지난 3월 유클리드 우주망원경으로 퀘이사 31개를 발견해 지금까지 관측한 수가 두 배 이상 늘었다"고 6일 발표했다. 퀘이사는 블랙홀 주변 물질들이 우주에서 가장 밝게 빛을 내는 현상이다. 태양보다 1조배 이상 밝다. 그중 2개는 우주 나이의 5%밖에 되지 않은 시기에 발생한 것으로 나타나, 관측 사상 가장 오래된 퀘이사로 기록됐다. 이번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은 이날 국제 학술지 '천문학과 천체물리학'에 실렸다.

◇우주의 심연 블랙홀에서 폭발한 빛

블랙홀은 별이 수명을 다해 폭발하고 극도로 수축한 상태다. 지구 정도 질량이 블랙홀이 되면 지름이 1㎝로 수축된다. 이러면 사물을 끌어당기는 힘인 중력이 엄청나게 강해 '검은 구멍'이란 뜻의 영어 이름처럼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한다. 보이지도 않는 우주의 심연인 블랙홀이지만 퀘이사 덕분에 그 존재를 드러낸다. 블랙홀에 끌려가는 물질들이 그 주변을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면서 서로 마찰하면 강력한 빛이 뿜어져 나온다.

이번에 발견한 퀘이사 중 12개는 우주의 나이가 지금의 6%가 채 되지 않았을 때 생긴 것으로 확인됐다. 유클리드 국제 컨소시엄 연구진은 이른바 적색편이(赤色偏移) 현상으로 퀘이사의 연대를 확인했다. 적색편이는 우주 팽창 때문에 빛의 파장이 붉은색처럼 길어지는 현상이다. 적색편이는 사이렌 소리의 변화와 비교하면 이해하기 쉽다.

유클리드 우주망원경이 찾은 퀘이사(노란 점) 31개의 위치. 그중 연대가 가장 오래된 것들은 붉은 점으로 표시됐다./ESA

구급차가 다가오면 사이렌 소리가 높게 들리지만, 지나쳐 멀어지면 소리가 낮아진다. 높은 소리는 파장이 짧고 낮은 소리는 파장이 길다. 마찬가지로 초기 우주의 천체는 우주 팽창에 따라 멀어져 빛의 파장이 긴 붉은색 쪽으로 치우친다.

퀘이사 12개는 적색편이 7 이상으로 나타났다. 우주가 팽창하면서 아주 먼 천체에서 오는 빛의 파장이 7배로 늘어났다는 의미다. 논문 공저자인 네덜란드 레이던대의 조셉 헤나위(Joseph Hennawi) 교수는 "적색편이가 7이면 우주가 탄생한 지 불과 7억5000만년 지났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며 "이는 현재 우주 나이의 6%도 채 되지 않는 시기"라고 말했다.

그중 EUCL J172902.75+641018.1과 EUCL J125308.55+705432.3은 각각 적색편이 7.77과 7.69로 확인됐다. 우주의 탄생 후 첫 6억 7000만 년 동안 등장한 것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퀘이사라는 기록을 세웠다. 두 천체 모두 130억 광년(光年·1광년은 빛이 1년 가는 거리로 약 9조4600억㎞) 조금 넘는 거리에 있다. 약 130억 년 전 은하를 관측했다는 말이다.

◇"초기 우주 격변 이해에 도움" 기대

초기 우주의 퀘이사는 그 기원인 초거대 블랙홀이 우주 초기에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내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헤나위 교수는 "태양 질량의 수십억 배에 이르는 이 괴물 같은 천체들은 우주가 갓 태어났을 당시에도 있었지만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거대한 질량을 갖게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초거대 블랙홀의 생성 과정을 밝히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우주 최초의 퀘이사를 찾아 헤맸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초기 우주는 은하가 충분히 커질 시간이 부족해 퀘이사 자체가 드물었다. 간혹 생겼어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빛이 너무 약해져 현재 지구와 가까운 다른 밝은 별과 구분하기 힘들었다.

유럽우주국(ESA)이 2023년 7월 발사한 유클리드(Euclid) 우주망원경이 우주에서 관측 임무를 하고 있는 모습의 상상도. 하늘 전체를 대상으로 은하 수십억 개를 찾고 있다./ESA

유클리드는 퀘이사 연구 수준을 완전히 바꾸었다. 국제 컨소시엄 연구진은 이번 발견으로 초기 우주에서 생긴 퀘이사의 수가 두 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그동안 적색편이 7 이상인 퀘이사 10여 개를 발견하기까지 10년 이상 걸렸지만, 유클리드는 단 1년 만에 그보다 많은 퀘이사를 발견했다.

유클리드는 2023년 7월 발사된 우주망원경으로, 고감도 카메라로 하늘 전체를 관측해 은하 수십억 개의 목록을 만들고 있다. 현재 유럽 15국과 미국, 캐나다, 일본 과학자 2000여 명이 유클리드 컨소시엄에서 연구하고 있다.

컨소시엄에 따르면 유클리드는 독보적인 적외선 관측 능력으로 이전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희귀하고 극도로 먼 천체들을 찾을 수 있다. 특히 헤나위 교수는 "최근 인공지능 검색 알고리즘 덕분에 수천만 개의 관측 대상 데이터를 검토하고, 소수의 진짜 퀘이사만을 확실하게 선별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참고 자료

Astronomy & Astrophysics(2026), DOI: https://doi.org/10.1051/0004-6361/2026588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