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생성형 인공지능(AI)과 함께 10년 넘게 풀리지 않았던 이론물리학 문제를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 AI가 논문 문장을 다듬거나 자료를 찾는 수준을 넘어, 수학적 증명의 방향을 제안한 사례다.
조르지오 파리시 이탈리아 사피엔자대 명예교수와 프란체스코 잠포니 사피엔자대 교수는 1일(현지 시각) 통계물리학 분야 국제 학술지 '통계역학: 이론과 실험(JSTAT)'에 재밍 현상을 설명하는 수학적 관계식의 증명을 공개했다. 파리시 교수는 무질서하고 복잡한 물리계의 숨은 질서를 밝힌 공로로 202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재밍은 입자들이 일종의 교통체증에 빠지는 현상을 뜻한다. 모래, 거품, 곡물처럼 많은 입자가 처음에는 흐르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움직이지 못하고 단단한 물체처럼 굳는 현상이다. 재밍은 원래 거품이나 알갱이 물질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지금은 신경과학과 AI 등 복잡한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도 활용된다.
연구진은 앞서 2014년 재밍을 설명하는 이론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관계식을 발견했다. 재밍 이론에 등장하는 두 수학적 매개변수 a와 b를 더하면 항상 1이 된다는 것이었다. 수치 계산으로는 이 관계가 매우 높은 정확도로 확인됐다. 하지만 왜 반드시 a+b=1이 되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연구진은 생성형 AI 모델이 수학적 추론에 활용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 문제를 앤스로픽의 AI 모델 클로드 소넷 4.6과 오퍼스 4.7에 제시했다. 먼저 클로드에게 10여 년 전 자신들이 수행했던 수치 계산을 재현하게 하고, a+b가 1이라면 왜 그런지 증명할 수 있는지 질문했다.
클로드 오퍼스 4.7은 증명을 위한 핵심 아이디어를 빠르게 제시했지만, 초기 증명에 오류와 불일치가 있었다. 이후 연구진은 AI가 낸 결과에서 오류를 확인하고 수정하는 검증 과정을 거쳐 내용을 논문으로 정리했다. 이 과정에서 클로드 소넷 4.6은 세부 단계를 보완하는 데 활용됐다. 연구진은 AI와 주고받은 프롬프트 40개의 대화 기록을 별도로 공개했다.
잠포니 교수는 "클로드 모델이 수학적 추론 능력에서 비교적 앞서 있는 것으로 보였다"며 "AI는 기존 방정식 안에 이미 들어 있던 관계를 찾아내 증명했다. 답은 바로 거기 있었고, 우리가 보지 못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례는 생성형 AI가 논문 요약이나 문장 교정, 코드 작성에 그치지 않고 증명 전략을 찾는 데 쓰인 대표 사례다. 그러나 AI가 과학자를 대체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클로드는 증명 방향을 제안했지만, 초기 결과에는 오류가 있었다. 이를 검증할 수 있는 전문가의 역할이 필수적이었다.
최근 AI의 과학 연구 활용은 산업계에서도 확대되고 있다. 앤스로픽은 지난달 과학 연구용 AI 플랫폼 '클로드 사이언스'를 공개했다. 이 도구는 연구자들이 데이터 분석, 문헌 검토, 복잡한 계산 작업을 수행하는 데 쓰이도록 설계됐다.
다만 과학계의 제도는 아직 AI를 연구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네이처 등 주요 학술지는 대형언어모델(LLM)이 연구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에 논문 저자가 될 수 없으며, 활용 사실을 논문 안에 명시해야 한다는 원칙을 두고 있다.
참고 자료
Journal of Statistical Mechanics: Theory and Experiment(2026), DOI: https://doi.org/10.1088/1742-5468/ae7bd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