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웜이 살을 분해해 만들어진 동물 골격 표본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떼까마귀, 엘리게이터 가아, 유라시아부엉이, 야생 고양이, 회색늑대./PLOS One

과학 수업의 과제로 개구리 골격 표본을 만들어야 했다. 살을 발라내려고 삶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자칫 뼈까지 다 녹아버리기 십상이었다. 이제 반려 도마뱀의 사료인 슈퍼웜만 있으면 그런 문제가 없다. 동물의 사체를 분해하는 애벌레가 독성 화학 약품 없이 골격 표본을 만드는 친환경 기술로 떠올랐다.

이란 마슈하드 페르도시대 생물학과의 만수르 알리아바디안 (Mansour Aliabadian) 교수 연구진은 지난 1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에 "아메리카왕거저리(학명 Zophobas atratus)의 애벌레인 슈퍼웜이 동물의 사체에서 골격만 남기는 데 효율적인 수단임을 실험으로 입증했다"고 발표했다.

◇애벌레 수백 마리가 사체 분해

골격 표본은 과학 연구와 교육에 필수적이다. 골격을 비교해 동물의 진화 과정을 알아내고 행동까지 유추할 수 있다. 문제는 동물 사체에서 뼈만 얻는 게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동물 사체를 효소나 화학약품으로 살을 제거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독성이 심해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최근 대안으로 나온 것이 수시렁이류(Dermestes) 애벌레같이 동물 사체를 분해하는 곤충이다. 하지만 수시렁이는 도중에 성충으로 자라 다른 곳으로 탈출하기 쉽다. 이 때문에 골격 표본 만들려다 귀중한 다른 소장품이 훼손되는 일이 많았다.

슈퍼웜 애벌레를 이용한 동물 골격 표본 제작 과정./자료 PLOS One

연구진은 슈퍼웜이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실험했다. 슈퍼웜은 파충류·양서류·조류·어류의 사료로 많이 쓰여 구하기 쉽고 수시렁이 애벌레만큼 동물 사체도 잘 분해한다. 특히 수시렁이 애벌레와 달리 무리를 이룰 때는 성충으로 발달하지 않는다. 골격 표본을 만드느라 밀폐 시설을 갖출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연구진은 무게가 9g에 불과한 이집트과일박쥐 사체부터 4.2㎏인 늑대까지 종(種)과 크기가 다른 동물 사체 8가지에 슈퍼웜을 풀어놓았다. 사전에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제거했다. 슈퍼웜은 수백마리가 모여 작은 동물의 살을 몇 시간 만에 먹어 치웠다.

애벌레들은 연약한 새 두개골조차 뼈에 손상을 주지 않고 깨끗하게 살을 발라냈다. 큰 동물은 골격만 남기기까지 하루 이상 걸리기도 했다. 이때는 8시간마다 배고픈 애벌레를 보충했다. 연구진은 사체 1g당 슈퍼웜 10~15g이 골격만 남기는 데 최적의 비율이라고 결론지었다.

아메리카왕거저리의 애벌레인 슈퍼웜 무리가 동물 사체에서 살을 분해해 골격만 깨끗하게 남기는 모습. 저렴하고 친환경적인 동물 골격 표본 제작 기술로 주목받았다./Anthony Lewis, PLOS

◇자금 부족한 작은 연구 기관에 최적

논문 공동 저자인 독일 슈투트가르트 주립 자연사 박물관의 닐루파르 알라에이 카키(Niloofar Alaei Kakhki) 박사는 "슈퍼웜은 기존의 다른 방법에 비해 속도가 매우 빠르고, 환경 친화적이며, 관리도 매우 쉽다"고 말했다.

수시렁이 애벌레는 다르다. 패트릭 캠벨(Patrick Campbel) 영국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수석 큐레이터는 사이언스지에 "수시렁이 애벌레로 골격 표본을 만들기 위해 다른 소장품과 완전히 분리된 전용 '실험실 내 실험실'에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키 박사는 슈퍼웜은 수시렁이 애벌레와 달리 사체를 분해하는 동안 번식할 위험이 적기 때문에, 애벌레를 사육할 공간이나 자금이 부족한 소규모 기관들도 도입할 수 있다고 했다.

마이크 러더퍼드(Mike Rutherford) 영국 글래스고대 박물관의 동물학 큐레이터는 "작은 갈비뼈 수백 개가 서로 얽히거나 무너져 내리지 않게 하면서 뱀 사체에서 살을 제거할 방법을 찾고 있다"며 "우리 박물관에는 수시렁이 애벌레를 키울 별도 시설이 없어 슈퍼웜에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PLOS One(2026), DOI: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3496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