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한 번만 투여하면 당뇨·비만을 치료할 수 있는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계열의 유전자 치료제가 전 세계 최초로 임상시험에 들어간다.
미국 바이오 기업 프랙틸 헬스(Fractyl Health)는 지난 11일(현지 시각) 네덜란드 규제 당국으로부터 세계 최초의 GLP-1 유전자 치료제인 '레쥬바(Rejuva·RJVA-001)'에 대한 임상 1·2상을 승인받았다고 밝혔다.
암이나 난치병에 주로 사용됐던 유전자 치료제의 활용 범위가 갈수록 넓어지면서 비만 치료제까지 적용된 경우다. 비만·당뇨 같은 만성 질환도 단 한 번의 유전자 치료제 투약으로 질병의 근원을 치료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평생 단 한 번 맞는 비만 치료제 나올까
프랙틸 헬스가 개발하는 유전자 치료제 레쥬바는 특수 카테터(환자 몸속에 넣는 얇고 긴 튜브 형태의 의료용 관)로 췌장에 약물을 직접 주입하면, 인슐린 분비 세포가 지속적으로 GLP-1 호르몬을 만들어 내도록 설계됐다.
GLP-1은 식후 혈당을 낮추고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으로, 혈당을 높이는 글루카곤의 분비를 억제하는 특성이 있다.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나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가 외부에서 GLP-1 유사체를 주입하는 방식이라면, 레쥬바는 몸이 직접 GLP-1이 계속 나오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동물 실험 단계에선 고지방식을 섭취한 쥐에게 레쥬바를 1회 투여했을 때 35일 만에 체중이 최대 29% 감소하는 효과를 보였다. 프랙틸 헬스 측은 6월 1일부터 환자 모집을 시작하고, 이를 통해 하반기 중엔 첫 투약 및 예비 데이터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네덜란드 외에 호주에서도 임상을 진행하기 위한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회사 측은 호주 임상의 경우엔 올해 3분기쯤 승인이 나길 기대하고 있다.
◇비만까지 접수한 유전자 치료
본래 유전자 치료제는 암이나 희귀 유전 질환 치료제에 한정적으로 적용돼 왔다. 개발 과정이 까다롭고 연구·개발 비용도 워낙 많이 드는 탓에 적용 범위를 넓히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유전자 교정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치료제의 타깃도 대중적인 만성 질환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추세다.
지난달 미 식품의약국(FDA)이 리제네론이 개발한 유전성 난청 치료를 위한 유전자 치료제 '오타르메니'를 세계 최초로 승인했다. 테라퓨틱스가 개발하는 유전성 혈관부종 유전자 치료제도 최근 임상 3상에 성공하면서 미국 내 승인 신청 절차에 돌입한 상태다.
유전자 치료제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최근엔 비만·당뇨 등 대규모 만성 질환에 적용하는 시도도 잇따르고 있다.
미국 '웨이브 라이프 사이언스'는 1년에 1~2번만 맞으면 체중은 줄이면서도 근육이 빠지는 부작용을 막아주는 유전자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지난 임상 1상(240㎎ 투여)에선 12주 만에 내장 지방은 9% 줄어들고, 근육량은 늘어나는 효과를 보였다. 다만 최근 발표된 400㎎ 고용량 시험에선 전체 지방 감소가 1% 미만, 내장 지방 감소는 5%, 근육량은 0.2% 정도 줄어드는 데 그쳤다.
미국 바이오 기업 '애로우헤드 파마슈티컬스'도 간 세포 유전자와 지방 세포 유전자를 타깃으로 하는 유전자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임상 1·2상 중간 결과, 24주 동안 투여했을 때 참가자들의 내장 지방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일각에선 이 같은 비만 유전자 치료제가 실제로 임상을 거쳐 상용화되기까진 앞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유전자 치료제인 만큼, 몸에서 GLP-1 호르몬이 부족하게 또는 과도하게 생성되어도 조절이 어려울 수 있고, 유전자 치료제가 워낙 고가인 만큼 상업화에 성공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거란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