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이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원장이 12일 미디어데이에서 발표하고 있다./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지질자원연·KIGAM)이 희토류 공급망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가공·분리·정제 기술 확보에 속도를 낸다. 희토류를 단순히 자원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산업에 쓸 수 있는 원료로 바꾸는 기술의 문제로 보고 국가 차원의 공급망 안정화 전략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지질자원연은 지난 12일 대전 본원에서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희토류 공급망과 자립 기술 확보 전략을 공개했다.

희토류는 전기차 모터, 풍력발전기, 스마트폰, 반도체 장비, 첨단무기 등에 쓰이는 핵심광물이다. 문제는 광석을 캐는 것만으로는 산업에 바로 쓸 수 없다는 점이다. 광석에서 필요한 성분을 골라내는 선광, 금속 성분을 뽑아내는 제련, 여러 희토류 원소를 나누는 분리, 순도를 높이는 정제 과정을 거쳐야 전기차 모터나 방산 부품에 쓰이는 고순도 원료가 된다.

지질자원연은 현재 희토류 공급망의 핵심 문제가 '싸게 못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 수 있는 기술의 부족'이라고 진단했다. 과거 희토류 가공 산업이 낮은 인건비와 환경 규제 부담 때문에 중국으로 이동했다면, 이후 30~40년 동안 중국이 산업화 기술을 축적하면서 지금은 기술 격차 자체가 공급망 장벽이 됐다는 설명이다.

권이균 지질자원연 원장은 "희토류 광물은 세계 여러 지역에 있지만, 실제 원료로 가공되는 길은 중국에 집중돼 있다"며 "환경 문제 때문에 하지 않을 뿐,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인식은 정책적 오판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질자원연은 희토류 공급망 전략을 두 축으로 제시했다. 첫째는 공급망 안정화다. 해외 자원국과 협력해 탐사 역량을 제공하고, 동시에 가공 기술을 고도화해 한국 기업이 해외 광산 개발과 현지 가공에 참여할 수 있는 기술적 신뢰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질자원연은 올해부터 '희토류 가공 K-플랜트' 핵심 장비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K-플랜트는 희토류 광석이나 재활용 원료에서 필요한 원소를 뽑아내 산업용 고순도 화합물로 만드는 공정과 장비를 국산화하는 사업이다.

특히 중국이 강점을 가진 중희토류 회수 기술을 따라잡는 데 집중한다. 중희토류는 고성능 영구자석의 내열성과 성능을 높이는 데 쓰여 전기차, 로봇, 항공우주, 방산 분야에서 중요성이 크다. 지질자원연은 자원 보유국과의 협력, 국내 기업과의 상용화 연계를 통해 기술 개발이 실제 공급망 구축으로 이어지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동시에 지질자원연은 젖산, 요소 등 천연 유기물 기반 용매를 활용해 희토류를 녹이고 분리하는 친환경 공정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폐자석과 폐배터리에서 희토류를 다시 회수하는 자원순환 기술도 공급망 안정화의 한 축이다. 국내에 대규모 희토류 광산이 부족한 상황에서 사용 후 제품을 다시 자원으로 활용하는 '도시광산'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김윤미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해저지질연구센터장이 서태평양의 해저 코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한국지질자원연구원

중장기적으로는 국내와 서태평양 등에서 확보할 수 있는 원료를 바탕으로 탐사부터 가공, 원료 생산까지 이어지는 전주기 자립화 기술을 갖추는 것이 목표다. 현재 지질자원연은 서태평양 해역의 희토류 자원 탐사를 진행하고 있다.

권 원장은 "서태평양과 같은 공해상 자원 개발은 국제해저기구(ISA) 등 국제 규범과 절차를 따라야 하는 장기 과제"라며 "지금부터 탐사 데이터와 기술을 축적해야 미래 자원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지질자원연은 이날 달·화성 자원탐사와 인공지능(AI) 기반 지질재난 대응 연구도 함께 소개했다. 다누리호 감마선 분광기 자료를 활용한 달 원소 지도 제작, 달 착륙 후보지 분석, 현지자원활용(ISRU) 기술 개발 등이 우주자원 분야의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또 지진, 산사태, 싱크홀, 연안재해 등을 통합 분석하는 AI 기반 지질재난 대응 플랫폼 'K-가디언' 프로젝트도 공개됐다.

권 원장은 "핵심광물 공급망과 미래 우주자원, 복합재난 대응은 국가 미래 경쟁력과 국민 안전을 좌우하는 전략 연구 분야"라며 "국가가 필요로 하는 연구를 선도적으로 수행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