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차가 달릴 만한 높은 바빌론 성벽과 알페이오스 강변의 제우스 신상을 보았다. 공중 정원과 태양신 헬리오스의 거상도.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피라미드의 위용과 마우솔로스의 거대한 영묘도 보았으나, 구름에 닿을 듯한 아르테미스 여신의 신전을 보자 다른 것들은 그 빛을 잃었다. 태양마저 올림포스 밖에서 그와 견줄 만한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 있는 스핑크스. 스핑크스는 사람 얼굴을 하고 동물 몸을 가진 상상의 동물이다. 피라미드를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한다./게티이미지

기원전 2세기 그리스의 시인 안티파트로스는 자신의 시에서 가장 경이로운 건축물 7가지를 소개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당시 세계를 의미하는 고대 헬레니즘 문명권에서 이룩한 웅대한 건축과 예술 작품을 일컫는 말이지만, 지금은 다 사라지고 오직 피라미드만 남았다. 시인은 아르테미스 신전을 으뜸으로 꼽았지만, 지금껏 살아남은 점을 감안하면 명실상부 최고의 불가사의는 피라미드인 셈이다.

과학자들이 4500년 전 세워진 피라미드의 비밀을 밝혀냈다. 단서는 거대한 석재를 옮기는 길이었다. 스페인의 빈센테 루이스 로셀 로치 박사는 "고대 이집트인들은 외부의 경사로 대신 피라미드 가장자리를 따라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통로를 만들어 무거운 석재를 단기간에 쌓을 수 있었다"고 지난 3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 프레스 저널 유물 과학'에 발표했다.

가장자리에 석재 이동로 설치

안티파트로스가 말한 피라미드는 아마도 기원전 26세기에 세워진 고대 이집트 제4 왕조 쿠푸 왕의 무덤일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완공 당시 높이 147m, 밑면 한 변의 길이 230m로 피라미드 중 크기가 가장 커 대(大)피라미드로 불리기 때문이다. 기자의 대피라미드는 지금껏 건축학의 미스터리였다. 바퀴 달린 수레도, 철제 도구와 도르래도 없는 시절, 무게가 17t까지 이르는 거대한 석재 230만개를 쿠푸왕 재위 기간인 20~27년 만에 쌓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나 소설에서 우주인이 세웠다고 묘사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로셀 로치 박사는 스페인 발렌시아 공대에서 패턴 인식과 인공지능(AI) 박사 학위를 받은 컴퓨터 공학자다. 그는 2020년 대피라미드 건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기존 설명마다 모순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대표적인 설명이 외부 경사로다. 피라미드에 연결되는 길을 만들고 석재를 옮겨 쌓는다는 단순한 설명은 쉽게 이해되지만, 피라미드가 위로 올라갈수록 석재를 옮기는 길이 너무 가팔라진다는 문제가 있었다.

가장자리 일부는 석재를 쌓지 않고 그 위를 모래나 흙, 판자를 덮어 경사로를 만든다. 네 면의 가장자리마다 만든 경사로를 통해 석재를 옮겨 쌓는다. 피라미드가 완성되면 경사로를 잔돌로 채워 메운다./npj 유물 과학

그는 바로 종이에 대안을 그렸다. 피라미드 가장자리를 따라 올라가는 나선형 길이라면 경사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바로 컴퓨터에 피라미드 건설 현장을 3D(입체)로 구축하고 '통합형 가장자리 경사로'라는 모델을 시뮬레이션(모의실험)했다.

원리는 간단하다. 한 단씩 쌓으면서 가장자리 일부 부분은 석재로 채우지 않고 그 위를 모래나 흙, 판자로 덮어 석재를 옮기는 3.8m 너비 나선형 경사로를 만든다. 이렇게 하면 길의 경사도가 7도 정도로 유지돼 24~25명이 매달리면 3t 가까운 표준 석재 블록 하나를 썰매에 싣고 밧줄을 당겨 올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라미드를 다 쌓고 가장자리 운송로를 덮으면 겉으로 보기에 완벽한 사각뿔이 만들어진다. 처음에는 경사로를 하나만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피라미드의 네 면 모두에 길을 내 이동 효율성을 높였다.

시뮬레이션 결과 4~6분마다 석재 블록을 하나씩 쌓을 수 있었다. 이 속도라면 대피라미드가 14~21년 만에 완공될 수 있다. 하지만 석재 채석 과정과 노동자들의 휴식 시간을 감안하면 총 건설 기간은 20~27년으로 늘어난다. 예전에는 노예들을 쉴 새 없이 부려 피라미드를 세웠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작업자 대다수가 숙련된 장인과 노동자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만큼 휴식 시간도 제대로 제공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로 모래 다지고, 나무 도르래 이용

이번 시뮬레이션은 단순한 사고 실험이 아니라 앞선 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진행됐다. 2014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의 물리학자들은 모랫길에 물을 뿌리면 바퀴 없는 썰매로도 충분히 피라미드까지 석재를 옮길 수 있다고 발표했다. 모래에 물을 뿌리면 모세관 현상에 따라 모래 알갱이들이 연결된다. 이러면 마른 모래보다 두 배 정도 단단해진다. 덕분에 석재를 싣고 썰매를 끌어도 앞에 모래가 쌓이지 않고 쉽게 미끄러진다는 것이다.

물리학자들의 실험 결과는 이집트 벽화 기록과도 일치한다. 기원전 19세기 고대 이집트 제12 왕조의 지방 총독이었던 제후티호테프의 무덤 벽화를 보면 거대한 조각상을 실은 썰매를 남성 172명이 밧줄로 끄는 모습이 나온다. 그런데 벽화에서 한 명은 밧줄을 잡지 않고 석상 앞에 있는 모래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오늘날 물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고대 이집트인들이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암스테르담대 연구진은 모래에 물을 적당량 뿌려 석재를 실은 썰매를 옮기는 데 필요한 인원을 절반으로 줄였다고 추정했다.

기원전 19세기 이집트 지방 총독의 무덤에서 나온 벽화. 172명이 밧줄로 썰매를 끌어 거대한 조각상을 운반하고 있다. 썰매 앞쪽에 서 있는 사람(붉은색 원 안)은 모래에 물을 뿌리고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초보적인 도르래 원리도 적용했다. 2018년 영국 리버풀대와 프랑스 동양 고고학 연구소 공동 연구진은 외부 경사로에서 나무 기둥에 밧줄을 감아 피라미드에 석재를 옮길 수 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이집트 동부의 하트누브 채석장에서 양쪽 가장자리에 계단과 나무 말뚝 구멍이 있는 경사로를 발굴했다. 같은 방법으로 피라미드 건설 현장에서 말뚝에 밧줄을 걸고 계단에 있는 사람들이 아래위에서 당겼다는 것이다. 덕분에 피라미드 건설 현장에서 더 가파른 경사로도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 결과, 나무 기둥 도르래로 밧줄을 당기면 경사도가 11도인 가파른 길에서도 무거운 석재 블록을 끌어올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로셀 로치 박사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에서 피라미드 가장자리에 만든 경사로에 물을 뿌리고 나무 기둥에 밧줄을 걸어 석재를 끌어올린다고 가정했다. 또 피라미드의 두 면이 맞닿는 모서리에는 길을 넓혀 석재를 실은 썰매를 90도 회전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이때도 역시 나무 기둥을 도르래 삼아 밧줄을 당겨 썰매의 방향을 틀었다고 추정했다.

우주 입자가 찾은 비밀 공간

나선형 가장자리 경사로 모델은 앞서 2023년 스캔피라미드(ScanPyramids) 국제 공동 연구 프로젝트의 관측 결과와도 일치한다. 당시 연구진은 엑스(X)선으로 인체 내부를 보듯 물질을 이루는 기본 입자인 뮤온 입자로 피라미드를 투시했다.

뮤온은 전자처럼 물질 내부를 잘 관통한다. 과학자들은 피라미드 내부에서 포착된 뮤온 입자의 수를 비교해 빈 곳을 찾을 수 있다. 돌이 있는 곳보다 빈 곳에서 뮤온이 더 많이 검출된다. 로셀 로치 박사가 가정한 가장자리 경사로는 뮤온 측정에서 확인된 내부 빈 공간과 경사도가 같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내시경으로 촬영한 이집트 대피라미드 내부의 비밀 공간. 북쪽면 입구 뒤쪽에 있었다. /ScanPyramids

대피라미드 내부에는 관이 놓인 지하의 석실분이 있고, 한가운데 여왕의 방과 그 위 왕의 방이 층층이 있다. 여왕의 방과 왕의 방 사이에는 높이 8m, 폭 2m의 대회랑(大回廊)이 47m 이어져 있다. 스캔피라미드 연구진은 2016년과 2017년 각각 피라미드 북쪽 입구 위쪽과 대회랑 바로 위에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공간을 찾아냈다.

스캔피라미드 연구진은 뮤온 측정으로 피라미드 북쪽 입구 바로 뒤쪽에 있는 비밀의 공간이 가로·세로 2m에 길이는 9m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곳에 내시경을 넣어 위쪽이 아치형 구조라는 것도 확인했다.

프랑스 건축가인 장 피에르 우댕은 피라미드 내부에 자동차가 다니는 터널 같은 나선형 통로가 있다고 주장했다. 뮤온 탐사로 찾은 공간도 그 일부라고 봤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대피라미드 내부의 비밀 공간은 통로가 아니라 피라미드 입구 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방이나 공간의 무게를 분산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본다.

로셀 로치 박사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모델 역시 이 비밀 공간이 가장자리 경사로로 무거운 돌을 옮길 때 발생하는 엄청난 하중을 견디려고 일부러 비워둔 구조적 완충 구역이라고 설명했다. 물리학과 우주과학에 컴퓨터 공학, AI까지 총동원된 끝에 구리 끌과 밧줄, 나무 썰매만으로 세운 대피라미드의 비밀이 밝혀지고 있다.

참고 자료

npj Heritage Science(2026), DOI: https://doi.org/10.1038/s40494-026-02405-x

Nature Communications(2023),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3-36351-0

University of Liverpool(2018), https://news.liverpool.ac.uk/2018/11/02/ancient-quarry-ramp-system-may-have-helped-workers-build-egypts-great-pyramids/

Physical Review Letters(2014), DOI: https://doi.org/10.1103/PhysRevLett.112.175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