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최근 양자컴퓨터를 더 정확하고 안정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한 전용 AI 도구 '아이싱(Ising)'을 공개하면서 양자 기술 경쟁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그러나 업계가 먼저 부딪히는 벽은 연산 능력보다 냉각이다. 양자칩을 절대영도(영하 273.15도) 가까이로 온도를 낮추는 냉각 기술의 핵심 냉매인 헬륨-3가 주요 병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헬륨-3 한스푼에 3000만원까지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이 개발하는 초전도 방식 양자컴퓨터는 정보 처리 기본 단위인 큐비트(qubit)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려면 절대영도와 거의 같은 수준 온도까지 냉각돼야 한다. 이런 극저온 환경을 만드는 표준 장비가 '희석 냉동기'다. 세계 최대 업체인 핀란드 블루포스(Bluefors)는 1000개가 넘는 큐비트를 겨냥한 대형 냉각 플랫폼을 선보였다. 양자칩이 커질수록 냉각 장비도 대형화하는 별도의 인프라가 되고 있다.
희석 냉동기의 핵심 냉매가 헬륨-3다. 헬륨-3는 지구상에 극히 드문 동위원소로, 미국 에너지부(DOE)에 따르면 자국 공급의 사실상 유일한 원천은 핵무기용 삼중수소가 붕괴하며 생기는 부산물이다. DOE는 이를 회수·분리해 판매한다. 러시아도 비슷한 방식으로 조달한다. 이처럼 헬륨-3 공급은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에 크게 의존하는 체제다.
이에 따라 가격도 불안정하다. 헬륨-3는 보조금과 할인 여부에 따라 기체 1리터당 1000~2만달러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기체 1리터는 액체로 바꾸면 1티스푼보다 적은 양이다. 실제로는 180리터가 들어간 희석 냉동기도 있는데, 최고가 기준으로 10리터만 써도 20만달러가 들어 희석 냉동기 가격(60만달러 안팎)의 3분의 1에 육박할 수 있다. 양자컴이 대형화할수록 냉각 비용도 함께 불어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또 양자컴 상용화가 본격화할수록 헬륨-3 공급망도 불안해질 전망이다.
이에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지난 1월 헬륨-3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모듈형 극저온 냉각기 기술 제안서를 긴급 공모했다. DARPA는 이런 기술이 국방과 상업 분야 모두에서 "극적인 변혁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냉각 문제가 더 이상 실험실의 과제가 아니라, 차세대 양자·국방 기술의 전략 변수로 올라섰음을 보여준다.
◇탈(脫)헬륨-3 경쟁
미국이 찾는 기술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연구 결과를 중국 연구팀이 지난 2월 네이처에 발표했다. 헬륨-3 없이도 영하 273도에 거의 다다르는 초저온을 구현할 수 있는 금속성 자기 냉각 물질을 공개한 것이다. 다만 이는 양자컴 전용 냉각기라기보다는 헬륨-3 대체 가능성을 보여준 소재 연구다. 과학기술계 일각에서는 양자컴 냉각 기술 경쟁이 미·중 패권 경쟁의 한 축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한다.
헬륨-3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은 민간 기업에서도 두드러진다. 핀란드 블루포스는 미국 스타트업 인터룬과 계약을 맺고 2028~2037년 해마다 최대 1만리터의 헬륨-3를 달에서 공급받기로 했다. 거래 규모는 3억달러(약 445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인터룬은 달 표면에 매장된 헬륨-3를 채굴하겠다는 구상이다.
독일 스타트업 키우트라는 아예 다른 길을 택했다. 1930년대부터 알려진 자기 냉각, 즉 자성 재료에 자기장을 걸었다 뗐다 하며 열을 빼앗는 방식을 쓴다. 키우트라는 지난달 냉각 장치를 계속 작동시키는 상태에서도 헬륨-3 없이 절대 영도에 가까운 초저온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를 대형 양자컴 냉각으로 확장하는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핀란드 알토대와 VTT 기술연구소 연구팀은 거대한 희석 냉동기 대신 양자칩 안에 냉각 기술을 넣는 방안을 개발 중이다.
달 채굴, 자기 냉각, 칩 내장 냉각, 희토류 합금 등 개발 중인 기술은 다양하지만 목표는 하나다. 냉전의 유산인 핵무기 부산물에 기댄 공급망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양자컴 냉각 기술 경쟁에 대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서부 시대 '골드 러시'에 빗대 '콜드 러시(Cold Rush)'라고 했다. 양자컴 패권 경쟁은 절대 영도로 가는 길을 누가 먼저 새로 뚫느냐의 싸움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