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가 예방접종하는 모습. 기사 내용과 무관. /조선DB

"어린이 예방접종은 위험하다." "정부가 백신으로 인구를 통제하려 한다."

이미 과학적으로 틀렸다고 검증된 건강 음모론을 하나 이상 믿는 사람이 10명 중 7명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글로벌 PR 기업 에델만 트러스트 연구소가 23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표적인 건강 관련 음모론 6가지 중 하나 이상을 사실로 믿는 응답자가 7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을 포함한 16국 성인 1만6000여 명(국가당 약 1000명)을 대상으로 올해 2~3월 설문 조사한 결과다.

연구진은 '소아 백신 위험이 이익보다 크다'(31%), '수돗물 불소화가 해롭다'(32%), '백신은 인구 통제 수단이다'(25%), '생우유가 살균우유보다 건강하다'(28%), '임신 중 해열제는 자폐를 유발한다'(25%), '동물성 단백질이 식물성보다 무조건 건강하다'(32%) 등 과학적으로 반박된 주장 6가지를 제시했다. 전체 응답자의 70%가 이 중 하나 이상을 사실로 믿는다고 답했다. 이 중 3개 이상을 믿는 비율도 29%에 달했다.

건강 관련 음모론을 하나 이상 믿는 비율은 인도(89%)와 남아프리카공화국(88%)에서 가장 높았고, 독일(68%), 프랑스(67%), 영국(61%), 미국(61%) 등 서구권에서도 절반을 넘었다. 한국은 64%였고, 3개 이상을 믿는 비율은 20%였다.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적지 않은 수치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연주

◇대졸 69%도 믿는다… "교육 수준과 무관"

이번 결과는 건강 관련 음모론이 일부 극단적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학력이 높거나 뉴스를 많이 본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졸 이상 응답자의 69%가 하나 이상 음모론을 믿었으며, 대학 미만 학력(70%)과 큰 차이가 없었다.

연령별로도 18~34세(79%), 35~54세(70%), 55세 이상(60%) 등 전 세대에서 나타났다. 특히 고령층이 더 취약할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55세 이상이 가장 낮았다.

가짜 건강 정보를 3개 이상 믿는 집단은 오히려 건강 뉴스를 가장 많이 소비하고(67%), AI에 건강 질문을 가장 자주 하며(61%), 자신의 건강 상태를 가장 좋다고 평가(77%)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 부족이 아니라 정보 과잉 속에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있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문제는 정보 결핍이 아니라 과잉"이라며 "너무 많은 정보 속에서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라고 분석했다.

◇"의사보다 눈치 안 주는 AI에 의지"

이 혼란 속에서 건강 정보와 관련해서 인공지능(AI)에 대한 의존도는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16국 평균 35%가 이미 AI로 건강 관리를 한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84%는 일반 건강 질문, 78%는 치료 조언, 74%는 의사 진단에 대한 추가 의견을 구하는 데 AI를 활용했다. 감정 상담까지 맡긴다는 응답도 67%에 달했다.

"정식 의료 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AI를 잘 다루면 의사만큼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응답은 64%였다. AI 이용자들은 의사보다 AI가 '덜 단정적'(38% 대 20%)이고 '이해하기 쉽다'(34% 대 23%)고 평가했다. 의사에게 말하기 어려운 생활 습관이나 고민을 AI에는 더 쉽게 털어놓는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민간 보험 불신 최고

한국 응답자에서는 또 다른 특징이 나타났다. 회사에 대한 신뢰도가 가장 낮았다. "건강 문제에 대해 직장이 옳은 일을 할 것"이라는 응답은 40%로 조사 대상 16개국 중 최하위였다. 글로벌 평균(71%)과 31%포인트 차이가 났다. 민간 의료보험사 신뢰도(39%)도 최하위였다.

건강 정보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낮았다. "올바른 판단을 내릴 자신이 있다"는 응답은 31%로 일본(24%)에 이어 최하위권이었다. 정보는 넘치지만 신뢰할 기준은 부족한 상황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에델만 트러스트 연구소의 저스틴 블레이크 상무는 "가장 중요한 발견은 허위 정보를 믿는 집단에 대한 기존 인식이 틀렸다는 점"이라며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