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바둑·체스·스타크래프트를 넘어 마침내 '현실 세계의 스포츠'에서 인간 선수를 꺾었다. 소니 AI가 개발한 탁구 로봇 '에이스(Ace)'가 엘리트 선수와 맞붙어 승리를 거둔 것이다. 국제탁구연맹(ITTF) 규칙에 따라 경기용 탁구채와 공인구로 치른 경기다. 연구 결과는 22일(현지 시각) 국제학술지 네이처 표지 논문으로 게재됐다.
연구팀은 "AI 로봇이 실제 스포츠에서 인간을 이길 수 있다는 연구 결과"라며 "물리적 공간에서 인간의 반응 속도와 의사결정을 따라잡거나 넘어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e스포츠 같은 가상세계 뿐 아니라 물리적 실제 세계에서도 인간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AI는 지난 수십 년간 체스(1997년 딥블루), 바둑(2016년 알파고), 스타크래프트 II, 가상 레이싱 게임 '그란 투리스모' 등 디지털 공간에서는 잇따라 인간 챔피언을 꺾어 왔다. 그러나 지각·판단·제어가 모두 밀리초 단위로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 실제 스포츠에서는 인간의 상대가 안 됐다.
탁구가 특히 까다로운 이유는 공의 속도가 초속 20m(시속 72㎞)를 넘는 데다, 선수들이 공을 주고받는 간격도 0.5초가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탁구공의 최대 회전(스핀)은 초당 약 160회에 달해 공의 궤적뿐 아니라 라켓이나 테이블에 맞고 난 뒤 움직임까지 크게 바꾼다. 스핀이 고수들의 핵심 전술로 꼽히는 이유다.
앞서 여러 탁구 로봇이 등장했지만, 대부분 공 발사기를 쓰거나 탁구대를 축소하고 서브는 제외하는 등 단순화된 조건에서 시연해 왔다. 이와 달리 이번 연구팀은 실제 탁구 경기 규칙 그대로 진행했다.
에이스의 눈은 경기장 외곽에 설치한 9대의 APS 카메라와 3개의 시선 제어 시스템이다. 이 장치들은 공의 3차원 위치와 회전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이렇게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AI 로봇은 32밀리초 단위로 다음 동작을 결정한다. 경기 중 탁구공 회전까지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대응하는 로봇은 에이스가 사실상 처음이다. 서브는 인간 시연을 학습한 토스 동작에 알고리즘으로 최적화한 스윙 궤적을 결합해 15종류 서브를 구사할 수 있도록 했다.
소니 AI 연구팀은 "에이스는 공 인식과 제어, 로봇 구동까지 전 과정을 20.2밀리초 안에 처리했다"고 밝혔다. 이는 엘리트 탁구 선수가 공을 보고 반응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약 232밀리초)의 10분의 1 수준이다
에이스는 공이 네트를 스치고 튀는 불규칙한 상황에도 재빨리 대응했다. 연구팀은 "시뮬레이션으로 학습하기 어려운 드문 상황도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실제로 에이스는 일본 대학 대회 출전 경력이 있는 10년 차 이상 탁구 엘리트 선수 5명, 일본 프로리그 선수 2명과 맞붙었다. 올림픽 규격 경기장에서 일본탁구협회(JTTA) 공인 심판의 판정 아래 경기를 치렀다.
일본 엘리트 선수 5명과 각각 3판 2선승제로 붙은 경기에서는 에이스가 3명을 이겼다. 2명에게는 졌다. 5판 3선승제로 치른 프로 선수 2명과 대결에서는 1게임만 따내고 6게임을 잃어 완패했다. 연구팀은 논문 제출 이후인 작년 12월 추가 대결에서는 에이스가 프로 선수 1명을 이기는 등 성능이 더 향상됐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번 성과는 AI가 빠르고 변화무쌍한 실세계 환경에서 지각·추론·행동을 동시에 해낼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라며 "제조업·서비스 로보틱스 영역으로 AI 응용 범위가 넓어질 것"이라고 했다.
다만 한계도 여전하다. 에이스는 사람과 달리 몸과 눈이 분리된 방식이다. 경기장 곳곳에 설치된 여러 카메라가 공을 보는 눈이고, 탁구채를 휘두르는 로봇팔은 탁구대 끝에 따로 있는 것이다. 실력도 1997년 체스 챔피언을 꺾은 IBM의 '딥블루'처럼 탁구를 평정할 수준은 아직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