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신약 후보 물질을 선점하기 위해 전 세계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돈 보따리를 풀고 있다.
중국이 최근 몇 년 사이 전 세계 파이프라인의 30%를 차지하는 바이오 핵심 거점으로 부상하면서, '더 싸고, 더 효율적으로' 신약을 개발하려는 글로벌 빅 파마들의 시선이 중국으로 쏠리는 것이다.
중국 바이오 기업들이 보유한 신약 후보 물질이 최근 기술력에 있어서도 앞선 경우가 많고, 다른 나라보다 임상 속도가 빠른 데다 선진국 대비 연구·개발 비용이 적게 든다는 점에서도 각광받는다. 최근엔 미래 시장 장악력을 갖추기 위해 중국 바이오 기업에 손을 내미는 국내 기업도 늘어나는 추세다.
◇中 신약 후보 물질 쇼핑하는 빅 파마
미국 제약사 화이자는 지난 2월 중국 바이오 기업 사이윈드와 최대 4억9500만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고, 이 회사가 개발하고 있는 비만 치료제 신약 후보 물질 '에크노글루타이드'에 대한 중국 내 상업화 권리를 확보했다. 이 제품은 지난 3월엔 중국 현지 승인을 받았다. 중국에선 '시안웨이잉'이란 이름으로 팔린다.
화이자는 앞서 지난해 중국 선양에 있는 바이오 기업 쓰리에스바이오로부터 항암제 후보 물질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12억5000만달러를 지불하기도 했다.
글로벌 빅파마들의 중국 신약 후보 물질 쇼핑은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14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미국 바이오 기업들은 중국 바이오텍과 70건의 계약을 체결했고, 이를 통해 약 56억달러를 선지급했다.
미국 길리어드 사이언스도 중국 선전에 있는 기업 프리진 바이오파마와 최대 16억4000만달러 규모 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체내에서 직접 면역세포를 만드는 '인비보(in vivo CAR-T)' 기술을 확보했다. 계약금은 1억2000만달러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는 최근 중국 CSPC 그룹과 비만·당뇨 치료제 후보 물질을 확보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초기 계약금만 12억달러다. 프랑스 사노피도 중국 시노바이오파마에서 혈액암 치료제 후보 물질을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최대 15억달러로, 글로벌 개발·상업화 권리를 확보하는 구조로 알려졌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이처럼 앞다퉈 중국 바이오 기업에 손을 내미는 것은 중국 기업들이 최근 임상에서 잇따라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화이자가 인수한 중국 사이윈드의 비만 치료제 후보 물질의 경우엔 48주 임상 3상에서 15% 이상 수준의 체중 감소 효과를 보이면서 글로벌 치료제와 유사한 수준의 효능을 입증했다.
임상 속도도 빠르다. WSJ에 따르면 미국에선 6~9개월 걸리는 임상 시험이 같은 조건으로 중국에선 2~4개월이면 끝낼 수 있다. 최근 중국의 대형 임상시험수탁기관들은 생물학, 화학, 전임상 등을 동시에 한곳에서 처리하는 통합 서비스를 제공한다. 임상 비용도 미국·영국·캐나다보다 30~50%가량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상 속도와 효율이 앞서면서 바이오 핵심 거점도 미국에서 중국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중국은 현재 전 세계 신약 파이프라인의 약 30.5%를 차지하고 있다. 2023~2025년 파이프라인 점유율 성장률에 있어서도 중국은 1위(27%)였다.
◇국내 기업들도 "中 바이오와 협력"
국내 기업들도 중국 바이오 기업과의 협력에 속도를 내고 있다.
JW중외제약은 지난 8일 중국 간앤리 파마슈티컬스와 GLP-1 수용체 작용제 신약 후보 물질 '보팡글루타이드'의 국내 독점 라이선스-인 계약을 체결했다.
중국 보팡글루타이드는 2주 1회 피하 주사(SC) 방식의 합성 펩타이드 신약이다. 현재 중국에서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고, 미국에서도 만성 체중 관리 적응증에 대한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개발에 성공한다면 비만 치료제 주사제 시장의 패러다임을 현재 '1주 1회'에서 '2주 1회'로 바꿀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JW중외제약은 올해 하반기 보팡글루타이드의 비만, 2형 당뇨병 적응증에 대한 국내 임상 3상도 동시에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HK이노엔도 지난해 중국 사이윈드로부터 GLP-1 유사체 '에크노글루타이드'의 국내 개발 및 상업화 권리를 도입한 상태다. 화이자가 중국 상업화 권리를 확보한 물질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중국 바이오텍 프론트라인 바이오파마와 항체-약물 접합체(ADC) 분야 후보물질 개발·제조·상업화를 위한 공동연구 파트너십을 맺었다. 빠르고 효율적인 신약 개발을 위한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