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버그 바이러스 감염자의 혈액(왼쪽)과 이집트과일박쥐(오른쪽). 박쥐는 이 바어리스의 숙주이다. 인간이 마버그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치명적인 출혈열에 걸린다./게티이미지

아프리카 한 동굴에서 야생동물들이 주기적으로 박쥐를 사냥하거나 사체를 먹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사냥감은 치명적인 출혈열을 일으키는 마버그 바이러스의 숙주인 이집트과일박쥐였다. 어쩌면 인간이 치명적인 감염병의 뇌관을 건드렸을지 모른다. 과거 이곳을 찾은 관광객이 마버그열로 사망한 사례가 있고, 1년여 연구 기간에 사람도 수백 명이나 카메라에 포착됐기 때문이다.

우간다 캄부라 사자 프로젝트의 알렉산더 브라츠코프스키(Alexander Braczkowski) 박사 연구진은 "이집트과일박쥐가 서식하는 우간다 파이썬 동굴에서 동작 감응 카메라로 368일 동안 야생동물 14종이 박쥐와 접촉한 사건 321건을 촬영했다"고 지난 20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했다.

아프리카 연구진이 우간다의 한 동굴에서 야생동물 14종이 마버그 바이러스의 숙주인 박쥐를 사냥하거나 사체를 막는 모습을 포착했다. 야생동물이 마버그 바이러스를 인간에 옮기는 중간 숙주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캄부라 사자 프로젝트

◇표범이 박쥐 사냥하는 모습 처음 포착

감염자의 혈액이나 체액을 통해 마버그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오한과 두통, 구토, 설사를 겪다가 1주일쯤 지나면 출혈까지 발생한다. 치사율이 25%가 넘는다. 마버그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75%가 넘는 에볼라 출혈열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같이 필로바이러스과(科)이다. 둘 다 이집트과일박쥐가 숙주이며, 중간 숙주인 야생동물을 거쳐 사람에게 감염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진은 지난해 우간다 서부의 퀸 엘리자베스 국립공원에서 아프리카표범과 점박이하이에나를 관찰하기 위해 동물이 지나가면 자동으로 사진을 찍는 동작 감응 카메라 덫을 설치했다.예상과 달리 카메라는 숱한 야생동물이 그 앞에 있는 동굴을 드나드는 모습을 포착했다. 연구진은 마버그 바이러스의 중간 숙주가 될 야생동물들이 카메라에 확실하게 찍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영상을 보면 표범과 하이에나, 독수리, 왕도마뱀, 원숭이 등 다양한 동물이 동굴에서 박쥐를 잡거나 물고 뜯어먹었다. 한 표범이 박쥐를 물고 가는 모습은 43번이나 찍혔다. 표범이 박쥐를 사냥한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확인됐다. 심지어 왕관독수리와 나일왕도마뱀이 박쥐를 두고 다투는 모습까지 포착됐다.

더욱 놀라운 점은 카메라가 작동한 4개월 동안 사람도 214명이나 동굴에 접근했다는 사실이다. 관광객이나 지역 야생동물연구소 직원, 심지어 단체 여행을 온 어린이들도 있었다. 주변에 마버그 바이러스에 대한 경고문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스크를 쓴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보스코 아투크와트세(Bosco Atukwatse ) 연구원이 우간다의 파이썬 동굴에서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다. 이 카메라에 박쥐와 접촉한 야생동물들이 포착됐다./캄부라 사자 프로젝트

◇마버그 바이러스의 유출 경로로 추정

조나단 엡스타인(Jonathan Epstein) 미국 원 헬스 사이언스 설립자는 뉴욕타임스지에 "야생동물들이 서로 어떻게 접촉하는지 추측만 할 뿐, 실제로 관찰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관찰 결과"라고 평가했다. 엡스타인은 바이러스성 인수 공통 전염병 전문가이다.

박쥐는 마버그 바이러스가 있어도 병에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박쥐를 통해 바이러스에 감염된 동물이나 사람은 치명적인 출혈열에 걸린다. 박쥐 서식지인 동굴은 바이러스가 유출되는 경로이다. 아담 흄(Adam Hume) 미국 보스턴대 의대 교수의 미발표 자료에 따르면 1967년 이후 마버그열 발생 사례 중 43%가 동굴 방문과 관련이 있다.

캄바라 사자 프로젝트 연구진은 우간다 동굴 역시 마버그 바이러스의 유출지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번에 연구한 동굴에서 50㎞ 떨어진 키타카 광산에서 2007년 발생한 마버그열 발생 사례는 파이썬 동굴의 박쥐에서 비롯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 2007년과 2008년 파이썬 동굴을 찾은 관광객 2명도 마버그 바이러스에 감염됐으며, 그중 한 명이 사망했다.

당시 생존자는 동굴 안쪽으로 3m 정도 들어가 30분쯤 머물렀다고 밝혔다.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조나단 타우너(Jonathan Towner) 박사는 관광객들이 동굴에서 박쥐의 배설물과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마버그열 환자가 발생하자 2011년 동굴에서 30m 떨어진 곳에 밀폐된 전망대가 세워졌다. 방문객이 동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표지판도 세웠다. 하지만 이번에 찍은 영상을 보면 사람들은 박쥐가 사는 동굴에 몇 m까지 접근했다. 연구진은 마버그 바이러스에 노출되지 않도록 관광객에게 보호 장비를 제공하고 동굴을 출입한 야생동물을 추적 관찰해야 한다고 밝혔다.

(A) 368일간 우간다 파이썬 동굴 앞에 설치한 카메라로 확인한 야생동물의 박쥐 접촉 사례. 파란색은 박쥐를 잡거나 사체를 먹은 사례이고, 주황색은 동굴에서 활동이 탐지된 사례다. (B)이 기간 야생동물 14종이 마버그 바이러스의 숙주인 과일박쥐와 접촉한 사례 321건이 촬영됐다./커런트 바이올로지

◇코로나19 같은 팬데믹 재현될 수도

바이러스가 박쥐에서 야생동물로 넘어가는 현장으로 추정된 사건은 이전에도 포착됐다. 2024년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 수의대의 토니 골드버그(Tony Goldberg) 교수는 우간다의 부동고 산림 보호구역에서 2년여 연구 끝에 침팬지들이 박쥐의 배설물을 먹는 모습을 포착했다고 국제 학술지 '커뮤니케이션 바이올로지'에 밝혔다.

자연에서는 동물이 배설물을 먹는 모습이 이상하지 않다. 어미 새는 새끼가 배설하면 바로 집어삼킨다. 사람이 키우는 반려동물도 종종 다른 동물의 배설물을 먹는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침팬지가 먹은 게 박쥐 배설물이라면 문제가 다르다고 본다. 박쥐가 바이러스의 온상(溫床)이기 때문이다.

박쥐 몸에는 바이러스 137종이 있는데 그중 67종은 인간에 감염된다. 에볼라 출혈열, 마버그열을 비롯해 광견병, 니파병이 박쥐 바이러스에서 시작됐다. 과학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박쥐에 있던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간 숙주인 야생동물이 불법 유통되면서 인간까지 왔다고 본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역시 박쥐에 있는 다른 코로나바이러스가 각각 사향고양이와 낙타를 거쳐 사람에게 퍼진 것으로 확인됐다.

1995년 개봉한 '아웃브레이크'는 코로나19 대유행을 예견한 영화로 꼽힌다. 영화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검역소 직원이 아프리카에서 밀수한 원숭이를 빼돌렸다가 사람들이 잇따라 피를 토하고 죽는 모습을 그렸다. 그 원숭이가 에볼라 바이러스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는 코로나19를 통해 이미 현실이 됐다. 또 다른 코로나19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인간과 야생동물 사이의 거리부터 복원해야 하지 않을까.

참고 자료

Current Biology(2026), DOI: https://doi.org/10.1016/j.cub.2026.02.043

Communications Biology(2024), DOI: https://doi.org/10.1038/s42003-024-06139-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