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브레이크스루상 시상식에 참석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의 진 베넷(Jean Bennett), 앨버트 맥과이어(Albert Maguire), 캐서린 하이(Katherine High) 교수(왼쪽부터). 이들은 유전성 망막 질환 치료제인 '룩스투르나(Luxturna)'를 개발한 공로로 올해 생명과학 부문상을 수상했다./미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실명(失明) 위기의 환자들에게 유전자 치료제로 다시 빛을 선사한 과학자들이 '실리콘밸리 노벨상' '과학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브레이크스루상(Breakthrough Prize) 수상자로 선정돼 44억원의 상금을 받는다. 우주를 이루는 기본 입자인 뮤온의 자기적 특성을 규명한 물리학자들과 복잡한 시스템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설명한 수학자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브레이크스루상 재단은 "유전성 망막 질환 치료제인 '룩스투르나(Luxturna)'를 개발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의 진 베넷(Jean Bennett), 앨버트 맥과이어(Albert Maguire), 캐서린 하이(Katherine High) 교수에게 올해 브레이크스루상 생명과학 부문상을 수여했다"고 18일(현지 시각) 밝혔다.

브레이크스루상은 2012년 러시아 출신 벤처 투자자 유리 밀너와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구글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등이 만든 기초 과학상이다. 올해는 생명과학과 기초 물리학, 수학 부문에서 다섯 팀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들은 각각 노벨상의 두 배가 넘는 300만달러(약 44억원)를 상금으로 받는다. 시상식은 토요일 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화려한 축제 분위기 속에 거행됐다.

◇"아이들 얼굴 처음 봤다"…실명 치료의 기적

룩스투르나는 레버 선천성 흑암시(LCA) 환자들을 위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처음으로 승인한 유전자 치료제다. 이 질환의 원인은 RPE65 유전자의 변이이다. 이로 인해 망막에서 빛을 감지하는 11-시스 레티날이라는 분자가 변형되면서 실명을 유발한다. 연구진은 정상적인 유전자를 인체에 무해한 아데노연관바이러스(AAV)에 실어 망막에 직접 주입하는 방식으로 시력을 회복시키는 데 성공했다.

베넷과 맥과이어 부부는 먼저 개에게 유전자 치료를 시험했으며, 그 성과를 바탕으로 하이 교수와 함께 어린이와 성인의 망막에 유전자 치료제를 주입하는 임상시험에 성공했다. 임상시험에 참여한 한 환자는 치료 후 "처음으로 자녀의 얼굴을 보았고,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베넷과 맥과이어 부부는 하버드 의대 시절 뇌 해부 실습 파트너로 처음 만났으며, 연구 과정에서 망막 질환을 치료했던 개 두 마리(비너스와 머큐리)를 입양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하이 교수는 자신의 상금 몫을 자선단체와 병원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생명과학 부문의 또 다른 수상자인 로사 라데메이커스(Rosa Rademakers) 벨기에 앤트워프대 교수와 브라이언 트레이너(Bryan Traynor) 미국 국립노화연구소 신경외과 전문의는 전두측두엽 치매(FTD)와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루게릭병)이 C9ORF72라는 공통된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유발된다는 사실을 각각 밝혀냈다. 이는 뇌에 영향을 주는 치매와 척수에 영향을 주는 운동 질환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은 획기적인 성과로 평가받는다.

세 번째 생명과학상은 겸상적혈구병과 베타-지중해빈혈 치료의 길을 연 스튜어트 오킨(Stuart Orkin) 하버드 의대 교수와 스위 레이 테인(Swee Lay Thein) 미국 국립보건원 수석연구원에게 수여됐다. 이들은 BCL11A 유전자를 비활성화하면 신체가 성인형 헤모글로빈 대신 건강한 태아형 헤모글로빈을 생성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연구는 세계 최초의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치료제인 '카스게비(Casgevy)' 개발로 이어졌다.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DNA에서 원하는 부위만 잘라 교정하는 RNA·효소 복합체이다.

미국 페르미랩의 뮤온 g-2 실험장치. 뮤온의 비정상적인 자기적 특성을 측정하는 곳이다./미 페르미랩

◇10억분의 127…인간 한계에 도전한 물리학

기초물리학상은 물질을 이루는 기본 입자 중 하나인 뮤온(Muon)의 자기적 특성을 수십 년간 정밀 측정해 온 g-2 국제 컨소시엄의 과학자 수백 명이 공동 수상했다. 물리학의 표준모형은 모든 물질을 쿼크 6개와 렙톤(경입자) 6개, 이들을 매개하는 입자 4개 등 기본 입자 16개와 이들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까지 총 17개로 설명한다. 뮤온도 그중 하나이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미국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 페르미랩 등이 참여한 이 대규모 프로젝트는 뮤온의 'g-인자'를 10억분의 127이라는 경이로운 정확도로 규명해 냈다. 페르미랩에서 연구에 참여한 데이비드 허조그(David Hertzog)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는 "연구진 전체가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기뻤다"며 "비록 이번 결과가 입자 물리학의 표준 모형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론적 예측치들 사이의 불일치 미스터리가 여전히 남아 있어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초물리학 특별상은 강한 핵력과 끈 이론 발전에 기여하고 국제 협력을 주도한 데이비드 그로스(David Gross) 미국 산타바버라 캘리포니아대 교수에게 수여됐다. 강한 핵력은 원자핵의 양성자와 중성자를 강하게 묶어주는 힘이다. 물리학의 표준 모형에 따르면 기본 입자들은 전자기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 그리고 만유인력(중력)을 통해 상호작용한다. 끈 이론은 우주의 모든 기본 입자가 0차원의 점이 아닌라 진동하는 1차원의 작은 끈으로 이뤄져 있다는 내용으로, 현대 물리학의 이론을 통합할 '만물의 이론' 후보로 꼽힌다.

수학 부문은 비선형 진화 방정식 연구의 대가인 프랭크 멀(Frank Merle) 프랑스 세르지파리대 교수가 수상했다. 양자물리학에서 유체역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응용되는 비선형 방정식은 해가 무한대로 치솟으며 통제 불가능하게 '폭발'하는 경향이 있어 다루기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멀 교수는 기하학적 접근법을 통해 이러한 폭발 현상을 우회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혼란스러운 상태가 '솔리톤'이라 불리는 안정적인 파동 패턴으로 단순화된다는 보편적 원리를 증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리콘밸리 노벨상, 과학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브레이크스루상 2026시상식에는 할리우드 배우와 모델 같은 스타들이 대거 참석했다. 왼쪽부터 앤 해서웨이, 지지 하디드, 셀마 헤이엑./AP, 게티이미지

◇"과학의 황금기 위협받고 있다" 수상자들 우려

브레이크스루상은 매년 실리콘밸리 거물들과 할리우드 배우들이 참석하는 화려한 시상식과 막대한 상금으로 화제를 모은다. 올해 시상식에도 엔 해서웨이, 지지 하디드, 셀마 헤이엑 같은 스타들이 대거 참석했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인 수상자들은 마음껏 기뻐하지 못했다. 연구비 감축과 경직된 이민 정책, 비과학적인 보건 정책 등으로 미국의 과학 연구 환경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진 베넷 교수는 "과학 연구 의제가 정치화되고 전문가들이 소외되면서 수 세대에 걸친 피해와 인재 유출이 우려된다"고 경고했다. 스튜어트 오킨 교수 또한 "생의학의 황금기를 구축해 온 과학 인프라가 해체되고 있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참고 자료

Breakthrough Prize(2026), https://breakthroughprize.org/News/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