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머리털 같은 비늘이 달렸다고 해서 이름 붙은 '트럼프 나방'. 정식 학명은 '네오팔파 도널드트럼피'다. /위키미디아
전남 압해도에서 발견된 화석 '둘리사우루스 허미니'가 살아있을 때를 상상해서 그린 그림. /전남대 한국공룡연구센터

최근 전남대 한국공룡연구센터 연구팀이 전남 신안 압해도에 있는 일성산에서 중기 백악기 지층을 탐색하던 중 아기 공룡의 화석을 찾아냈다는 기사를 썼습니다.

이 아기 공룡 화석은 매우 드물게 두개골까지 보존된 칠면조 크기의 화석이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선 15년 만에 새롭게 발견된 공룡 종이었고요. 연구팀은 이 공룡 이름을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기 공룡 만화 캐릭터인 '둘리'와 전남대 한국공룡연구센터 설립자인 허민 국가유산청장의 이름을 따서 '둘리사우루스 허미니'라고 붙였다"고 했습니다.

둘리사우루스라뇨, 정말 잊을 수 없는 이름 아닙니까? 이쯤 되니 몹시 궁금해졌습니다. 공룡 이름, 원래 이렇게 마음대로 붙일 수 있는 것이었나요?

◇우리가 몰랐던 공룡 이름 법칙

결론부터 말하면 네, 맘대로 붙일 수 있다고 합니다. 동물은 '국제 동물 명명 위원회(International Commission on Zoological Nomenclature)', 식물은 '식물명명규약(ICBN)'이 정한 국제 규약에 따라 학명을 정하게 됩니다.

이때 원칙은 반드시 최초 공식 논문 발표자가 이름을 붙여야 인정된다는 것, 이미 있는 이름은 중복해서 쓸 수 없다는 것, 라틴어 형태를 따라야 한다는 것 정도로 요약됩니다(반드시 실제 라틴어일 필요는 없고, 라틴어처럼 보이기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속(genus)과 종(species)으로 나눠서 이름을 붙여야 하고요. 이것만 지키면 어떤 것을 붙여도 상관없다는 것이죠.

2014년 브라질에서 발견된 육식 공룡 화석 '타노스 시모나토이'의 상상도. 마블 영화 속 빌런 '타노스'에서 이름을 따왔다. /위키미디아

이렇다 보니 생각보다 특이한 이름을 붙이는 경우도 정말 많습니다. 2014년 브라질에서 발견된 육식 공룡 화석의 이름은 '타노스 시모나토이'입니다. 왜 타노스냐고요? 널리 알려진 마블 영화 속 빌런 '타노스'에서 따왔습니다. 2018년은 영화 '어벤져스:인피니티 워'가 전 세계적으로 크게 흥행한 해입니다. 연구팀은 발견한 공룡이 생태계에서 매우 강력한 포식자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영화 속 타노스가 가진 압도적이고 파괴적인 이미지가 이 공룡과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럼 뒷부분은 왜 시모나토이냐. 이 화석을 발견한 고생물학자 이름이 세르지오 시모나토입니다. 시모나토라는 이름에 남성 명사에 따라붙는 라틴어 접미사 '-i'를 붙였습니다. 우리나라의 '둘리사우루스 허미니'에서 '허미니'가 '허민'이란 이름에 '-i'를 붙인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2011년 호주 과학자 브라이언 레사드는 이 파리 이름을 '스캅티아 비욘세애'라고 지었다. 엉덩이의 황금빛 털이 가수 비욘세를 연상시킨다는 뜻이다. /위키미디아

여성인 경우엔 '-ae'를 보통 붙입니다. 곤충 학명도 공룡 학명과 같은 원칙을 따르는 데요, 태국에서 발견된 한 기생벌 이름이 '알레이오데스 가가애'입니다. 왜 '가가애'냐, 이 벌의 화려한 몸통이 가수 레이디 가가의 독특한 의상 스타일을 떠올리게 한다고 해서 '가가(Gaga)'에 '-ae'를 붙였습니다. 앞에 붙은 알레이오데스는 기생벌의 한 종류를 지칭하는 학명이고요.

◇'비욘세 파리'부터 '트럼프 나방'까지

이 딱정벌레의 학명은 'Agra schwarzeneggeri'. 두꺼운 허벅지가 영화배우 아널드 슈워제너거를 연상시킨다고 이런 이름이 붙었다. /위키미디아

특이한 이름을 가진 곤충이나 동물은 파도 파도 계속 나옵니다. 1981년 호주 퀸즐랜드에서 채집된 파리가 있습니다. 엉덩이 부분에 화려한 황금빛 털이 빽빽하게 난 파리입니다. 2011년 호주 과학자 브라이언 레사드는 이 파리 이름을 '스캅티아 비욘세애'라고 짓습니다. 스캅티아는 등에과에 속하는 종류를 지칭합니다. '비욘세애'는 가수 비욘세에서도 따왔습니다. 이번에도 여성 명사에 따라오는 라틴어 접미사 '-ae'를 붙였죠. 레사드 박사는 당시 "파리의 황금빛 털이 비욘세의 무대 의상과 역동적인 춤을 떠올리게 했다"고 했습니다.

트럼프 나방도 있습니다. 2017년 발견된 나방입니다. 이 나방은 머리 부분에 노란색과 흰색이 섞인 비늘들이 빽빽하게 솟아 있는데 이 모습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헤어스타일과 꽤 닮았습니다. 캐나다 진화학자이자 고생물학자인 바즈릭 나자리는 그래서 이 나방에 '네오팔파 도널드트럼피'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네오팔파는 나방의 종류를 가리킵니다. 도널드트럼피는 아까 설명드렸으니 짐작하시겠죠? 남성명 명사 도널드 트럼프에 '-i'를 붙인 겁니다. 당시 이 이름은 트럼프가 제4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불과 사흘 전에 발표돼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한편 발견한 지역을 강조할 땐 '-ensis'라는 접미사가 붙습니다. 이번에 전남대 한국공룡연구센터팀이 '둘리사우루스 허미니'와 하루 차이로 발견한 공룡새 알 화석에 붙은 이름은 '옹관울리투스 압해도엔시스'입니다. '옹관'은 압해도에서 출토된 무덤 양식 이름입니다. 매끄럽고 기다란 타원형 알 모양이 옹관을 닮았다는 점에서 착안했다죠. '울리투스'는 알 화석이라는 뜻이고요. 종명은 발견 지역인 압해도 이름을 따서 '압해도엔시스'라고 붙였습니다. '-ensis'가 붙은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한 또 다른 공룡에 '-ensis'가 붙은 사례는 또 있습니다. 2002년 전남 보성에서 발견된 공룡 뼈 화석에 붙은 이름은 '코리아노사우루스 보성엔시스'입니다. 한국의 공룡이라는 뜻으로 '코리아노사우루스'라고 붙였고, 보성에서 발견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보성엔시스'라고 지은 것이죠.

비슷한 이유로 '파리시엔시스' '뉴욕엔시스'라고 이름 붙은 생명체도 있습니다. 1985년 파리의 한 냉각탑에서 발견된 레지오넬라균의 일종인 박테리아에 붙은 이름이 '레지오넬라 파리시엔시스'입니다. 2012년 뉴욕에서 발견된 박테리아 이름은 '스포로사르키나 뉴욕엔시스'입니다. 스포로사르키나는 포자를 만드는 꾸러미 모양의 세균을 가리킵니다. 뉴욕에 사는 환자의 샘플에서 발견된 박테리아라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