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잘 자라게 하려면 가지를 쳐줘야 하듯, 우리 뇌 속 회로도 적절히 '가지치기'를 해주면 오히려 학습 능력과 기억력이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초과학연구원(IBS)과 한국뇌연구원(KBRI) 공동 연구진은 뇌 속 보조 세포인 '별세포(Astrocyte)'를 이용해 원하는 신경 연결 부위(시냅스)만 정밀하게 잘라내는 '신트로고(SynTrogo)'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뇌 회로도 '편집'한다
우리 뇌는 수조 개의 시냅스가 얽힌 복잡한 회로망인 '커넥톰'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동안 과학계에서 이 회로 자체를 인위적으로 고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왔다.
연구진은 면역세포가 다른 세포의 일부를 뜯어 먹어 제거하는 현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연구진은 특정 단백질을 설계해 별세포가 목표로 정한 시냅스만 꽉 붙잡아 떼어먹도록(편집하도록)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바로 '신트로고' 기술이다.
◇시냅스 줄였더니 오히려 기억력 '점프'
연구진은 생쥐 뇌에 이 기술을 적용해 시냅스 밀도를 약 27%까지 줄여봤다. 놀랍게도 시냅스 개수는 줄었지만, 살아남은 시냅스들은 이전보다 훨씬 크고 튼튼해졌다.
남은 시냅스엔 에너지를 만드는 미토콘드리아와 신경전달물질 주머니가 더 많아졌고, 신호를 전달하는 효율이 높아지면서 뇌의 학습 능력이 전반적으로 상승했다. 시냅스 질이 더 좋아진 것이다.
실제로 실험 쥐는 이 기술을 적용한 후, 이전보다 기억을 더 오래 선명하게 유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령 특정 상자 안에서 쥐에게 아주 약한 전기 자극을 줌으로써 '이 상자=무서운 곳'이라는 기억을 심은 뒤, 시간이 흘러 쥐를 다시 그 상자에 넣는 실험 등을 진행했다. 기억력이 좋은 쥐일수록 상자에 들어가자마자 공포를 느끼고 몸이 굳어버리는 '프리징(freezing)' 현상을 보이게 된다. 실험 결과, '신트로고' 기술이 적용된 쥐는 일반 쥐보다 훨씬 더 오래, 그리고 더 강하게 몸이 굳었다. 아주 약한 자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억을 훨씬 더 선명하고 오래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신트로고 기술을 적용한 쥐는 또한 상황이 바뀌었을 때 과거 기억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인지 유연성'도 뛰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번엔 예전에 공포를 느꼈던 상자에 쥐를 넣되, 이번에는 전기 자극을 주지 않았다. 쥐는 이를 통해 '이제 안전하다'는 새로운 정보를 배우게 된다. 실험 결과, 인지 유연성이 떨어지는 쥐는 과거의 공포 기억에 사로잡혀 새로운 환경에서도 계속 겁을 먹는 모습이었던 반면, 신트로고 기술을 적용한 쥐들은 예전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환경에 더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폐·조현병 등 뇌 질환 치료에 응용
이번 연구는 시냅스를 제거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뇌 회로의 기능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이 기술은 시냅스가 너무 많거나 적어서 발생하는 자폐증, 조현병, 그리고 시냅스가 파괴되는 퇴행성 뇌 질환(치매 등) 치료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IBS 이창준 단장은 "이번 연구는 뇌 질환 치료를 위한 새로운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했다.
연구 결과는 15일(한국 시각)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온라인판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