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 환자가 컴퓨터 화면의 키보드를 보며 글자를 입력하는 모습. 뇌에 이식한 칩이 운동신호를 감지해 정상인과 비슷한 속도와 정확도로 손가락을 움직여 글자를 입력했다./미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브리검 신경과학연구소

정부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를 포함한 뇌 미래산업 육성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침습형 뇌 이식 기술부터 비침습형 웨어러블 기기, 뇌신경계 신약, 뇌 데이터 구축까지 아우르는 국가 연구·개발(R&D) 전략을 통해 차세대 의료·디지털 산업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8일 제44차 생명공학종합정책심의회를 열고 관계부처 합동으로 '뇌 미래산업 국가 R&D 전략'을 발표했다. 이번 전략은 1998년 '뇌연구 촉진법' 제정 이후 이어진 정부 R&D 성과를 산업과 국민 체감 서비스로 연결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핵심은 BCI 기술 육성이다. BCI는 사람의 뇌 신호를 해독해 컴퓨터나 기계를 제어하는 기술로, 척수손상 환자의 의사소통과 기기 조작, 감각 회복, 신경계 질환 치료 등에 활용 가능성이 거론된다. 최근 해외에서는 뇌에 칩을 이식해 컴퓨터를 제어하는 임상 연구와 상용화 시도가 이어지면서 관련 기술 경쟁도 빨라지고 있다.

정부는 이에 따라 2027년부터 '7대 국민체감 임무 중심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7대 프로젝트에는 사지마비 환자가 생각만으로 컴퓨터와 기계를 작동하는 기술, 뇌 심부 자극을 통한 치매·파킨슨병·우울증 치료, 시각 등 감각 복원 임플란트 개발이 포함됐다. 이와 함께 인공 의수·의족과 인공망막·청각장치, 뇌파 기반 외골격 장치와 이동기기, 감정·감각 구현형 가상 현실(VR)·증강현실(AR), 드론·로봇 제어 등도 추진 대상으로 제시됐다.

침습형 BCI는 척수손상, 시각장애 등 난치성 의료 분야를 중심으로 안전성과 임상 성과 확보에 초점을 맞춘다. 비침습형 BCI는 스마트 안경, 스마트워치 등 웨어러블 기기를 플랫폼으로 삼아 의료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방산 등으로 적용 범위를 넓힌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기술 개발과 사업화 사이의 단절을 줄이기 위해 과제별 전담 PM 체계를 두고 산학연병 협력 구조를 운영할 방침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의 규제 협력 체계를 통해 임상 속도를 높이고, 연구기관과 스타트업, 관련 기업이 참여하는 BCI 얼라이언스도 추진한다. 뇌 이식 전극 소재, 뇌신경망 특화 반도체, 뇌신호 해독 기술 등 핵심 요소기술 지원도 확대할 예정이다.

정부는 혈액뇌장벽(BBB) 투과, 뇌신경계 역노화, 뇌 오가노이드 등 범용성이 큰 플랫폼 기술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 신약 개발 성공 가능성도 높인다는 계획이다. 치매, 자폐, 우울증처럼 아직 근본적 치료제가 충분하지 않은 질환에 대해서는 기초연구를 지속 지원하고, 임상시험 지원과의 연계도 강화하기로 했다.

지역 거점을 중심으로 한 뇌산업 클러스터 조성도 추진된다. 대구는 한국뇌연구원을 중심으로 뇌연구 인프라를 집적하는 거점으로, 오송-대전 권역은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카이스트, 오송 바이오 산업 클러스터를 잇는 개방형 밸류체인 구축 지역으로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뇌과학과 인공지능(AI)의 융합도 전략에 포함됐다. 정부는 인지·감각·운동 기능과 관련한 뇌파·뇌영상 데이터를 학습한 뇌신경망 특화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을 추진하고, 장기적으로는 인간 뇌의 디지털 트윈 구현도 목표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2027년부터 대규모 뇌 데이터 확보를 위한 '뇌 지도 구축 프로젝트'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산업 성장 기반을 위한 제도 정비 과제도 제시됐다. 정부는 실험동물 자원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권역별 사육·실험 거점을 확충하고, 장기적으로는 뇌 오가노이드와 디지털 트윈을 활용해 동물실험 대체 가능성도 검토하기로 했다. 아울러 임상연구 가이드라인 마련과 부처 간 규제·진흥 협력체계 구축도 병행한다.

배경훈 과기정통부 장관은 "앞으로는 AI를 키보드나 스마트폰이 아니라 뇌와 직접 연결해 사용하는 인간-AI 인터페이스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며 "BCI를 포함한 미래 핵심 기술에 선제적으로 투자해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