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전문가들은 나이가 들면 노화 자체를 막을 수 없지만, 건강 수명을 늘리는 방식으로 노쇠는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Pixabay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이 늙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100세가 넘어도 또렷한 인지 능력을 유지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중년부터 기억력 저하를 겪는다. 최근 과학계에서는 노화성 건망증의 원인을 단순히 늙은 뇌에서 찾지 않고, 몸의 다른 기관과 뇌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아크 연구소를 포함한 국제 연구진은 그 단서를 뇌 바깥에서 찾았다. 연구진은 나이 든 쥐의 위장관에서 만들어지는 특정 물질이 장과 뇌를 잇는 신경 신호를 약화시키고, 기억력과 학습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12일 게재됐다.

그동안 신체의 다른 부위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뇌의 기억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는 꾸준히 제시돼 왔다. 장내 미생물(장속에 사는 세균들의 집합)이 학습, 기억,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여럿 나왔다. 다만 이런 연결 고리가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작동하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장내 미생물의 변화가 인지 기능 저하에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기 위해 젊은 쥐를 늙은 쥐의 장내 미생물군에 노출시켰다. 그 결과 젊은 쥐의 장내 환경은 늙은 쥐와 비슷한 방향으로 바뀌었고, 기억력과 인지 기능 검사에서도 성적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새로운 물체를 기억하는 능력이나 미로를 빠져나오는 능력 모두 저하됐다.

반대로 이 쥐들의 장내 미생물을 항생제로 크게 줄이자 기억 기능이 다시 회복됐다. 장내 미생물이 전혀 없는 무균 상태의 쥐에서는 노화에 따른 기억력 저하가 훨씬 느리게 나타나기도 했다. 연구진은 이를 토대로, 노화한 장내 미생물군이 만들어내는 특정 성분이나 부산물이 기억력 감퇴의 원인일 수 있다고 봤다.

특히 '파라박테로이데스 골드스타이니(Parabacteroides goldsteinii)'라는 세균은 나이 든 쥐의 장에서 더 많이 발견됐고, 기억력 저하와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세균이 늘어나면 중쇄 지방산이라는 물질이 증가하고, 이것이 장의 면역세포를 자극해 염증 신호 물질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생성된 물질은 장기의 상태를 뇌에 전달하는 '미주신경' 감각신경의 기능을 떨어뜨리고, 결국 기억 형성에 중요한 뇌 부위인 해마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연구진은 이미 기억력이 떨어진 늙은 쥐에서도 여러 방식의 개입으로 인지 기능을 되돌릴 수 있다고 밝혔다. 가장 단순한 방법은 항생제로 장내 미생물을 줄이는 것이지만, 장기적으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특정 박테리아를 겨냥한 박테리오파지(세균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를 활용했더니, 파라박테로이데스 골드스타이니의 활동이 억제되면서 중쇄 지방산 수치가 낮아졌고, 기억력도 함께 개선됐다.

또 다른 방법은 미주신경 자체를 자극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장 호르몬 콜레시스토키닌(CCK) 또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수용체 작용제를 사용해 미주신경 활동을 높였고, 늙은 쥐의 기억력이 개선됐다고 밝혔다. GLP-1 수용체 작용제는 식후에 분비되는 호르몬인 GLP-1과 비슷하게 작용해 혈당을 낮추고 체중 감소를 돕는 약물군으로, 삭센다, 위고비 등이 대표적이다.

연구진은 "중증 간질 환자나 뇌졸중에서 회복 중인 환자에게 미주신경에 미세한 전기 자극을 전달하는 치료법이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 시술을 받은 환자들 사이에서 인지 기능 향상이 보고된 바 있다"며 "궁극적으로 이번 연구 결과가 임상 현장에 적용돼 노화로 인한 인지 기능 저하를 막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Nature(2026),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6-101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