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가뭄과 폭염이 동시에 닥치는 복합재해가 늘고 있는 가운데, 폭염이 먼저 시작된 뒤 가뭄이 뒤따르는 유형이 2000년대 초반 이후 가파르게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땅과 대기가 서로 영향을 주며 재난을 키우는 악순환이 강해진 결과라는 분석이다.
예상욱 이화여대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前 한양대 교수) 연구진과 호주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 등 공동 연구진은 1980년부터 2023년까지 남북 위도 60도 사이 41개 지역의 관측 자료를 활용해 가뭄-폭염 복합재해를 추적한 결과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7일 발표했다.
기존의 관련 연구 상당수는 월별 자료를 활용해 가뭄과 폭염을 분석했다. 하지만 이 경우 둘 중 무엇이 먼저 시작됐는지, 또 두 현상이 얼마나 촘촘하게 맞물렸는지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서 일별 자료를 사용해, 같은 지역에서 하루 이상 시공간적으로 폭염과 가뭄이 겹치는 경우를 복합재해로 판별했다. 그리고 이 복합재해를 다시 폭염이 먼저 발생하고 가뭄이 뒤따르는 '폭염 선행형'과 가뭄이 먼저 시작된 뒤 폭염이 동반되는 '가뭄 선행형'으로 나눠 비교했다.
그 결과, 두 유형 모두 장기적으로 증가했지만, 증가 속도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최근 들어 폭염 선행형 복합재해는 약 110% 증가한 반면, 가뭄 선행형은 약 6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폭염 선행형은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비선형적으로 급증했다. 전 지구 평균 기온이 1도 오를 때 폭염 선행형 복합재해가 늘어나는 속도는 과거보다 약 8배 빨라졌다.
김용준 한양대 연구원은 5일 브리핑에서 "2000년대 초반 당시 전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약 0.6~0.7도 높은 수준이었다"며 "국제사회가 주요 임계선으로 여기는 '1.5도 상승' 이전에도 일부 극한 현상은 이미 급증하기 시작했을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 현상의 핵심 원인으로는 지면-대기 상호작용이 지목됐다. 쉽게 말해, 땅이 매우 뜨거워지면 그 열이 대기로 전달돼 공기가 더워지고, 공기가 더워지면 증발이 활발해져 토양 수분이 더 빨리 줄어든다. 땅이 마르면 원래 물이 증발하면서 주변을 식혀주던 효과도 약해진다. 그러면 지표는 더 쉽게 달궈지고 대기는 더 뜨거워진다.
연구진은 "이 같은 지면-대기 상호작용이 1990년대 후반부터 더 강해졌고, 그 여파가 약간의 시차를 두고 2000년대 초반 이후 폭염이 가뭄을 끌고 오는 복합재해의 급증으로 이어졌다"고 해석했다.
지역별로 보면 남아메리카 아마존 지역에서 폭염 선행형 복합재해의 비선형적 급증이 가장 두드러졌다. 연구진은 아마존처럼 식생 변화와 산림 훼손이 빠르게 진행되는 지역에서는 지면 상태가 크게 달라지기 쉽고, 이런 변화가 지면-대기 상호작용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폭염이 먼저 시작되는 복합재해는 사회적으로 더 까다로운 위험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한 폭염 뒤 짧은 시간 안에 토양이 급격히 말라버리면, 오래 지속되는 가뭄보다 훨씬 빠르고 갑작스럽게 피해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산불 위험을 높이고 농업 생산성 저하와 공중보건 위기로도 이어질 수 있다.
예상욱 교수는 "폭염이 유도하는 가뭄은 짧은 기간에 급격히 심해지는 '돌발 가뭄'과도 밀접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돌발가뭄의 발생 빈도가 늘고 있다"며 "복합재해 위험 관리 전략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참고 자료
Science Advances(2026), DOI: https://doi.org/10.1126/sciadv.aea3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