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유전자 교정 기술이 농업, 의료,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핵심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여전히 유전자 교정 생물체(GEO)가 유전자 변형 생물체(GMO)와 동일한 규제를 받는 등 기술 상용화에 제약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한·미 공동 팩트시트에 '농업 생명공학 제품 규제 승인 절차를 간소화할 것'이라는 문구가 들어가 관련 논의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이 모여 정책 방향을 모색했다.
20일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실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유전자 교정 기술과 규제 혁신'을 주제로 정책 세미나를 열었다. 조선비즈와 유전자 교정 바이오산업발전협의회는 주관으로 참여했다.
발제자로 나선 김진수 카이스트 공학생물학대학원 교수는 "과학 기술을 통해 새로운 기업이 만들어지고 일자리, 제품, 서비스가 생겨 경제 발전에 기여한다. 이처럼 과학 기술은 '민생을 위한 노력'"이라며 "유전자 교정 기술도 그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유전자 교정 기술은 살아 있는 세포의 특정 유전자만 골라 '오타를 고치듯' 정밀하게 수정하는 기술로, 기존 유전자 변형(GMO)처럼 외래 유전자를 통째로 삽입하는 방식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안전성과 활용도가 높다고 평가받는다.
현재 유전자 교정은 유전 질환 치료와 작물 생산성 향상, 바이오 연료용 식물 개발 등 여러 분야에 빠르게 적용되며 세계 시장을 재편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2023년 말 유전자 교정 기반 치료제 '카스게비'를 승인했고, 일본은 유전자 교정 토마토와 복어 등을 GMO 규제에서 제외해 시판 중이다.
반면 한국은 정반대 상황이다. 김 교수는 "현재 유전자를 넣거나, 빼거나 바꾼 생명체에 대한 '유전자변형생물체(LMO)' 법은 GEO를 GMO와 동일하게 취급해 생산과 재배, 판매, 수출을 사실상 금지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내부 유전자 일부만 바꾸는 GEO는 자연 돌연변이나 전통 육종과 구별하기가 어려운데, 방사선·화학물질로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전통 육종은 규제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더 정밀한 유전자 교정을 GMO로 묶는 것은 '알면 문제, 모르면 괜찮다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규제의 경직성이 연구 현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질환 대물림을 막기 위한 '세 부모 아기' 기술과 배아 유전자 교정 연구가 세계적으로 진전되고 있지만, 한국은 생명윤리법에 따라 인간 배아 연구 자체가 대부분 금지돼 있다"며 "관련 기술을 개발해 동물실험까지 했지만, 임상이 막혀 있다"고 말했다.
김진수 교수는 "유전자 교정 기술은 질병 치료와 식량 안보, 기후변화 대응 등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혁신적 수단"이라며 "과학적 검증과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규제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두 번째 발제에 나선 차진 유전자교정 바이오산업발전 협의회 박사는 GMO 안전성 평가 기준을 만들었던 경험을 소개하며 "GMO를 평가해온 입장에서 볼 때 유전자교정은 GMO와 전혀 다르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유전자교정 관련 주요 특허를 보유하고 있지만 실용화하지 못하는 현실은 '국가적 손실'이라고 덧붙였다.
차 박사는 "세계 각국 전문기관은 GEO 작물의 안전성이 작물을 교배하는 전통육종과 동등한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규제 체계를 GMO와 명확히 분리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유럽식품안전청(EFSA)을 포함한 주요 규제기관은 GEO 식물에서 나타나는 유전적 변화가 전통적인 돌연변이육종이나 육종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변화와 유형, 빈도가 유사하거나 오히려 낮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맞춰 세계 각국은 GEO를 GMO와 구분하는 정책을 명문화하고 있다. EU의 신유전자기술(NGT) 규칙에서는 카테고리 1 GEO에 대해 위해성 평가가 아니라 규제 면제 유형에 해당하는지 확인만 하는 구조다.
차 박사는 "일각에서 유전자 교정 기술이 의도치 않은 부위를 절단하는 '오프타깃'을 우려하는데, 인체 임상에서는 이슈가 될 수 있지만 동식물에서는 육종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킨 개체가 자연스럽게 제거된다"며 "LMO법이 애초 인체용 의약품 GEO에는 적용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는 만큼, 동식물·미생물 GEO 정책을 논의하면서 인체 임상 우려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문맥상 맞지 않는다"고 했다.
차 박사는 "유전자 교정은 GMO와 다르고, 전통 육종만큼 안전하다는 과학적 결론이 이미 여러 국제기구에서 반복돼 왔다"며 "한국도 이를 반영해 GEO를 별도의 합리적 체계로 다루지 않으면 국제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유럽은 기존 GMO와 구분해 NGT라는 용어를 쓰고, 영국은 정밀 육종이라는 소비자 친화적 표현을 사용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유전자변형생물체라는 강한 어감의 용어를 고수하고 있다"며 "제도 이해와 수용성을 떨어뜨린다"고 덧붙였다.
이날 최수진 의원은 "유전자 교정은 이미 의료나 농업, 환경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GMO와 같이 엮여 발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유전자 교정 기술에 대한 규제 간소화를 통해 산업이 활성화되고 국민에게 큰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