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의 대략 절반을 이탈리아 로마와 독일 베를린에서 나눠 산다면 어떨까. 서로 다른 나라의 삶을 경험할 기회이겠지만, 매년 양국을 오가야 한다면 번거로움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렇게 이민을 매년 반복하는 동물이 있다. 주로 유럽에 서식하는 작은멧박쥐 얘기다. 가을과 겨울에는 따뜻한 남부 유럽에 살다가 봄에 비교적 시원한 중부와 북부 유럽으로 이동해 여름을 지낸다. 이 박쥐가 하루 최대 383㎞ 이동하고, 적은 에너지로 오래 날기 위해 따뜻한 밤을 장거리 출발일로 정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상 조건이 좋은 날을 골라 하룻밤 사이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날아가는 셈이다.

박쥐 떼가 먼 길을 떠날 때 따뜻한 밤을 출발일로 선호하고, 하룻밤 사이에 383㎞까지 이동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오른쪽 사진은 막스플랑크 동물행동연구소가 박쥐에 초소형 측정 및 송신기를 장착한 장면이다.

독일 막스플랑크 동물행동연구소 연구진은 작은멧박쥐가 언제 얼마나 이동하는지 경로 등을 생체 원격 탐지로 확인했다고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지난 2일 발표했다. 연구진은 매년 봄에 멀리 이동하는 유럽의 작은멧박쥐 71마리에 초소형 사물인터넷(IoT) 태그를 부착하고, 경로를 추적했다. 연구진이 개발한 이 기기는 박쥐의 움직임과 주변 공기 온도를 측정하는 센서가 들어 있고, 무게는 1.2g에 불과하다. 1분 간격으로 측정해 데이터를 하루 총 1440건 무선 전송하는 방식이다. 연구진은 수신 데이터를 분석해 작은멧박쥐가 46일에 걸쳐 최대 1116㎞까지 이동하는 것을 확인했다. 하룻밤 사이에 383㎞ 날아간 경우도 있었다.

특히 따뜻한 밤에 장거리 이동을 선호한 것으로 조사됐다. 추운 밤에 비해 에너지를 덜 쓸 수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공기가 만나는 전선의 상승 기류를 타고 날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바람을 등지고 순풍을 타고 간 것이다.

연구진은 “박쥐들은 기압이 떨어지고 기온이 급상승하는 밤에, 즉 폭풍우가 오기 전에 떠났다”고 했다. 마치 강한 바람을 타고 서핑하듯 날아갔다는 것이다. 또 철새와는 달리 이동을 자주 멈추고 한 방향의 직선 비행을 선호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진은 “야행성인 박쥐의 장거리 이동은 관찰하기 어려워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는데, 초소형 센서와 무선 전송을 활용해 비밀을 풀 실마리를 찾았다”며 “적은 에너지로 멀리 날아가기 위한 박쥐의 전략도 알게 됐다”고 했다. 앞으로 연구진은 박쥐의 이동 시간과 경로를 예측한 뒤, 해당 시간에 풍력 터빈을 정지하도록 하는 방안 등을 연구할 계획이다. 대규모로 이동하는 박쥐가 풍력 터빈과 충돌해 죽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