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학년도 대입 정시모집 원서 접수가 지난 3일 마무리됐다. 올해 대입의 가장 큰 화두는 1509명에 달하는 의대 증원이었다. 지난 19년간 3058명을 유지하던 의대 정원이 4567명으로 한 번에 늘었다. 이공계 최상위권 학생들이 대거 의대로 진학하면서 이공계 교육이 무너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실제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광주과학기술원(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등 4대 과학기술원이 진행한 정시 모집에서 지원자가 큰 비율로 감소했다. 올해 대입에서 4대 과기원의 정시 지원자가 작년보다 28.2%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를 두고 의대 증원으로 이공계가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도 나왔다.
하지만 실제 4대 과기원 내부에서는 예상보다 의대 증원의 여파가 크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과기원 관계자는 “정시 모집에서 지원자 하락 비율이 크다고 이공계 위기가 현실화됐다고 말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며 “일반 대학과는 다른 과기원 입시의 특성을 잘 몰라 발생한 오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해 정시 모집에서 4대 과기원의 지원자가 큰 비율로 감소한 것은 맞는다. KAIST는 작년 대비 정시 모집 지원자가 38% 감소했으며, GIST가 25.2%, UNIST가 23%, DGIST가 22.7% 감소해 뒤를 이었다.
하지만 과기원의 정시 모집 정원은 대학마다 15명으로 4곳을 모두 더해도 60명에 불과하다. 4대 과기원의 전체 정원이 약 1600명인 점을 고려하면 정시 모집 비율은 4%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시 모집에서 서울대는 1321명, 연세대는 1493명, 고려대는 1210명을 모집했는데, 이런 종합대학과 과기원은 상황이 다른 것이다.
4대 과기원의 정시 모집 지원율이 크게 하락한 이유도 정원 자체가 적은 점이 꼽힌다. 모수가 워낙 적어 지원자 숫자가 소폭 감소하더라도 비율상으로는 하락폭이 커보이는 효과가 있다. 과기원 정원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시 모집 지원자까지 더하면 과기원에 대한 인기는 오히려 작년보다 더 높아졌다고도 볼 수 있다.
가령 KAIST의 경우 올해 수시 모집 지원자는 중복지원자를 포함하면 6500명으로 작년보다 514명 늘었다. 반면 15명을 모집한 정시 모집 지원자는 작년 2147명에서 올해 1333명으로 814명 줄었다. 수시와 정시를 모두 더하면 지원자가 약 300명 정도 줄었다. 이를 반영하면 이 기간 전체 지원자 감소폭은 3.7%에 불과하다.
DGIST와 UNIST는 올해 입시에서 오히려 지원자가 늘었다. DGIST는 정시 모집 지원자가 332명 감소했지만, 수시에서 742명 증가해 전체적으로 410명 늘었다. UNIST도 정시에서 387명 감소했고, 수시에서 772명 증가해 총 지원자는 385명 늘었다. GIST도 정시 모집에서 366명 감소했으나, 수시 모집에서 371명 늘어 전체 지원자에 큰 차이 없었다.
올해 4대 과기원의 정시 모집 경쟁률의 하락폭이 커보이는 이유는 또 있다. 지난해 진행한 2024학년도 입시에서 4대 과기원의 정시 지원자가 이례적으로 많았다. 가령 KAIST의 경우 2024학년도 정시 모집 경쟁률은 107대1 수준이었다. 반면 앞서 진행한 2023학년도는 37.05대 1, 2022학년도 61.8대 1, 2021학년도 37.1대 1이었다. 올해 KAIST 정시 모집 경쟁률은 88.87대 1로 평년 대비 높은 수준이다. 이 같은 경향은 KAIST를 제외한 나머지 과기원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다른 과기원 관계자는 “과기원은 정시 모집 정원이 워낙 적다 보니 입시 환경에 따라 경쟁률이 매년 크게 바뀐다”며 “올해도 의대 증원과 함께 여러 요인이 겹쳐 경쟁률 하락이 있었지만, 우려하던 이공계 위기가 현실화됐다고 당장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과기원 입시에서 의대 증원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올해 입시에서 대부분을 차지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수는 지난해 입시 대비 1만2000명가량 늘었다. 그럼에도 4대 과기원의 정시 지원자가 감소한 것은 분명하다. 정시 모집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4대 과기원에 합격하고도 입학을 포기한 학생이 얼마나 되는지 아직 지켜봐야 한다.
과기원 관계자는 “의대 증원의 영향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과학기술계 진출을 희망하는 이공계 최상위권 학생들은 여전히 과기원을 선호하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