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비마약성 진통제 ‘어나프라주’가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으면서 국내 38호 신약이 등장했다. 이로써 1999년 SK케미칼의 1호 국산 신약 ‘선플라주’가 탄생한 뒤 25년 동안 국산 신약이 총 38종 나왔다.

국산 신약은 국내에서 신물질 발굴에서 임상시험까지 연구·개발(R&D)이 이뤄진 신약을 말한다. 올해는 어나프라주와 자큐보정이 국산 신약 허가를 받았고, 앞서 31호 신약으로 허가받은 유한양행의 폐암 치료제 렉라자는 지난 8월 미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아 화제가 됐다.

◇내년 첫 신약 후보는

올해는 국산 신약 2종이 나왔다. 지난 4월 식약처는 제일약품의 신약 자회사 온코닉테라퓨틱스가 개발한 위식도 역류 질환 치료제 ‘자큐보정’을 품목 허가했다. 37호 신약이다. 자큐보는 ‘3세대 위장약’으로도 불리는 ‘칼륨 경쟁적 위산 분비 억제제(P-CAB)’다. 칼륨의 작용을 방해해 위산 분비를 막는 방식이다. 기존 치료제 대비 약효가 길고 편의성이 좋아 시장점유율이 빠르게 늘고 있다. 앞서 HK이노엔의 케이캡정(30호), 펙수클루정(34호)도 P-CAB으로 신약 허가를 받았다. 이처럼 제3세대 위장약을 출시한 제약사들은 시장점유율을 두고 경쟁하는 한편, P-CAB 시장을 빠르게 키워나갈 전망이다.

지난 12일 38호 신약으로 식약처 허가를 받은 비보존제약의 ‘어나프라주(성분명 오피란제린)’는 수술 후 중등도 이상의 급성 통증 조절을 위해 사용하는 주사제다. 기존 마약성 또는 비스테로이드성 소염 진통제와는 다른 기전을 가진 새로운 치료제다. 기존에 중증도 이상 통증에 사용할 수 있는 약은 마약성 진통제(오피오이드 계열)뿐이었다. 펜타닐 등 오피오이드 계열 진통제는 강한 중독성으로 인해 오남용과 불법 유통 등 사례가 늘면서 미국에서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초래했다. 비보존제약은 “신약 ‘어나프라주’가 진통제 대비 부작용이 낮고 중독 위험이 없으면서 빠른 진통 효과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래픽=이진영

내년을 기대하는 39호 신약 후보로는 동아에스티의 과민성 방광 치료제 DA-8010과 임상 3상 진행 중인 LG화학의 통풍 치료 신약 티굴릭소스타트가 꼽힌다. DA-8010은 지난 5월 국내 임상 3상을 마무리했지만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동아에스티는 개발 중단을 확정하지는 않고 추가적인 평가 후 개발 방향을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LG화학의 티굴릭소스타트는 임상 3상 2건 중 1건을 성공했고, 나머지 1건의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통풍 원인인 요산을 생성하는 효소 ‘잔틴 옥시다제’의 발현을 억제하는 약물이다.

◇올라간 경쟁력, 절차도 개선

업계에선 국내 기업들의 신약 경쟁력이 일정 수준까지 올라온 것으로 본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이 제약 정보 기업 사이트라인(Citeline) 통계를 인용한 결과를 보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은 미국(1만1200개), 중국(6098개)에 이어 셋째로 많은 3233개의 파이프 라인(R&D 중인 신약 개발 프로젝트)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파이프 라인은 2917개로 미국·중국·영국에 이은 4위였는데, 1년 만에 파이프 라인을 약 11% 늘리며 한 계단 올라선 것이다. 지난해 국내 제약사의 R&D 비용은 약 3조2000억원으로 1년 사이 약 32% 증가하기도 했다.

신약 R&D가 늘면서 신약 허가 기간도 대폭 짧아질 전망이다. 식약처는 내년 신약 품목 허가 수수료를 현재 883만원에서 4억1000만원으로 현실화하는 대신, 심사 인력을 늘리고 절차를 효율화해 신약 허가에 걸리는 기간을 420일에서 295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제약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도 렉라자를 포함해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신약들이 등장하고 있다”며 “기업 투자와 함께 정부 차원의 R&D 지원, 규제 개선 등이 동반된다면 1조원 이상 매출을 내는 국산 ‘블록버스터’ 신약도 꿈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