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방사선과 같이 미세한 에너지를 검출하는 우주용 센서나, 양자컴퓨터에 설치된 초전도 큐비트(qubit)의 양자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온도를 매우 낮게 유지해 열적 교란을 최소화해야 한다. 국내 연구진이 값비싼 냉매를 사용하지 않고 소형의 크기로 초저온을 달성할 수 있는 냉각 장치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정상권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교수 연구진은 세계 최초로 자기장 변화를 이용해 절대온도에 가까운 온도를 구현하는 방식의 ‘단열 탈자 냉동기’와 흡착식 냉동기를 통합한 구조를 제안하고 이를 구현해 절대온도 0.3K(-272.85도)의 냉각 온도를 달성했다고 19일 밝혔다. 흡착식 냉동은 활성탄과 같은 고체 흡착제 표면에 기체가 달라붙는 흡착 현상을 이용해 냉각 효과를 내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초저온 냉각을 위해 동위원소인 헬륨-3과 헬륨-4의 혼합물을 이용한 희석식 냉동기가 사용돼 왔다. 희석식 냉동기는 헬륨-3이 희석되는 과정에서 열을 흡수하는 원리를 이용한 냉각 방식이다. 하지만 희석식 냉동기는 값이 매우 비싼 헬륨-3을 사용하고, 밀도가 매우 낮은 헬륨-3이 순환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상온부에 거대한 기체 순환 장치가 요구돼 시스템의 크기가 거대하다는 단점이 있다.
연구진은 값이 비싼 헬륨-3을 냉매로 사용하지 않으면서 비교적 소형의 크기로 초저온을 달성할 수 있는 냉각장치를 개발했다. 자기장 변화를 이용한 단열 탈자 냉동기에서 기체 압축과 팽창을 통한 기존 냉각 방식과 달리 자성 물질의 압축과 팽창을 가능하게 하는 초전도 자석으로 기존의 대형 기체 순환 장치를 대체해 시스템을 소형화했다.
단 단열 탈자 냉동기는 기계적 움직임 없이 구성돼 신뢰성과 냉각 효율이 높지만, 작동 온도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단점이 있다. 연구진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4K(-269.15℃) 냉각 온도를 구현할 수 있는 상용 극저온 냉동기와 액체 헬륨-4의 증발 냉각 효과를 이용한 흡착식 냉동기를 통합한 구조를 채택했다. 여기에 국산 소재로 제작한 초전도 자석으로 단열 탈자 냉동기를 구동해 절대 온도 0.3K(-272.85도)를 구현했다. 수십 차례의 연속작동 테스트를 수행한 결과, 개발된 냉동기가 성능 저하 없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다.
정상권 교수는 “이번에 개발한 ‘통합형 단열 탈자 냉동기’는 소형화와 단순성을 모두 갖춘 혁신적인 초저온 냉각 방식으로, 다양한 양자 소자 냉각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앞으로 더 낮은 온도를 구현할 수 있는 자성 물질을 선택한다면 기존 희석식 냉동기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내년 5월 미 항공우주국(NASA)이 주관하는 우주 극저온 워크숍(Space Cryogenics Workshop, SCW)에서 발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