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학 분야의 대표 석학들이 반도체 산업 위기를 진단하고 해법을 찾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한국공학한림원은 18일 오후 서울 신라호텔에서 반도체특별위원회 연구 결과 발표회를 개최했다.
한림원은 지난 2월 국내 반도체 산업 생태계 현황과 정책·제도를 분석하고, 기술 경쟁력 강화와 산업 선도전략을 제시하기 위해 반도체특위를 출범했다. 특위에는 공학계 석학과 산업계 전문가가 함께 참여했다.
곽노정 SK하이닉스(000660) 사장과 이혁재 서울대 교수가 공동위원장을 맡고, 학계에서는 권석준 성균관대 고분자공학부 교수, 김동순 세종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교수, 백광현 중앙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가 참여했다. 산업계에서는 박재홍 보스반도체 대표, 안현 SK하이닉스 개발총괄 사장, 이현덕 원익 부회장, 조명현 세미파이브 대표,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가 참여했다.
이혁재 교수는 기조 발표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위기 조짐을 일곱 가지로 정리했다. 이 교수는 “우위를 보이던 메모리반도체 기술력은 평준화 시대에 진입해 해외 기업과 격차가 좁아졌고, 투자에 대한 이익률이 낮아지고 투자의 악순환 고리로 진입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제조의 기반산업인 소재·부품·장비 산업은 취약하고, 신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팹리스, 패키징 산업은 성장 기반이 미약하다”고 진단했다.
제도와 인프라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이 교수는 “인재는 유입되지 않고, 해외로 유출되는 인재가 많아졌다. 전력·용수 같은 필수 인프라 구축도 어렵고, 불필요한 중복 규제도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52시간제로 인한 업무 비효율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산업 위기를 극복할 해법으로 네 가지를 제안했다. 제조업 경쟁력을 키우고, 시스템반도체 생태계를 살리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 위한 연구개발(R&D)을 추진하고, 인재 유인과 유입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다. 각각의 해법은 안기현 전무와 권선준 교수, 김동순 교수, 백광현 교수가 발표했다.
제조업 경쟁력 강화와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회복을 위해서는 대대적인 투자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메모리기술과 첨단 패키징 기술에 적시 투자를 위해 300조원 규모의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현재 조성 중인 용인 클러스터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용수·전력 인프라 적시 제공도 필요하다.
시스템반도체 생태계를 위해서는 국내 팹리스에 맞는 파운드리 팹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팹리스부터 소부장, 패키징까지 국내 반도체 관련 기업의 R&D와 품질관리, 국제 표준을 책임질 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조원을 지원해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를 도우면 20년 뒤에는 300조원의 경제적 효과로 돌아온다는 설명도 나왔다.
안 전무는 “국내에서 생산한 소부장 제품을 국내 수요기업에 판매할 경우 판매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필요하다”며 “반도체는 속도 경쟁인데 속도를 지연시키는 원인인 규제와 주 52시간의 굴레도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R&D는 수요 기업과 대기업, 팹리스가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상용 타겟형 대형 R&D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마지막으로 인재 유입을 위해서 사학연금 같은 반도체 특별 연금법을 만들고, 중·고등학교에 반도체 전문 동아리를 만들어서 일찍부터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해외 인재 유치를 위해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대학의 반도체 학과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김기남 공학한림원 회장은 “대한민국 핵심인 반도체를 지켜내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공학한림원에서 1년 동안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우리 경제의 핵심인 K-반도체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