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9월 26일, 충남 서해안의 시험장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정확하게 표적을 맞혔다. 국내 최초의 탄도미사일 ‘백곰’이 약 6년간 개발 끝에 시험 발사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 7번째 지대지 유도탄 개발국으로 떠올랐고, 당시 확보한 원천 기술은 오늘날 ‘K방산’의 주춧돌이 됐다.
백곰 미사일 개발 등을 이끌며 한국 방위산업의 토대를 닦은 고(故) 심문택 국방과학연구소(ADD) 소장을 비롯해 엔지니어링, 자연, 생명, 융합·진흥 등 4개 분야에서 총 6명이 대한민국 과학기술 유공자로 선정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고 심문택 ADD 소장과 고 박달조 한국과학원(현 KAIST) 2대 원장, 박성현 서울대 명예교수, 이서구 이화여대 석좌교수, 채영복 원정연구원 이사장, 고 최남석 LG화학기술연구원장을 과학기술 유공자로 지정했다고 12일 밝혔다. 정부는 과학기술인의 명예와 긍지를 높이고 이들이 존중받는 사회 문화를 조성한다는 취지로 2017년부터 과학기술유공자를 지정하고 있다. 현재까지 총 91명이 지정됐다. 유공자는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고, 국가과학기술 정책 수립에 관한 자문과 출입국 심사 우대 등 예우를 받는다.
이번에 유공자로 지정된 고 심문택 소장은 한국 국방 연구·개발(R&D)의 기틀을 다져 국방력 강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1972~1980년 ADD의 2~4대 소장을 지낸 그는 1971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특명으로 시작된 ‘번개 사업’을 통해 소총과 수류탄, 탄약 등 기본 병기를 국산화했다. 한국 최초의 지대지 유도탄 개발도 이끌어 1978년 백곰 미사일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고 박달조 한국과학원장은 국내 불소화학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오늘날 KAIST가 정착하는 데 기여해 과기 인재 양성 기반을 마련했다. 그는 1929년 미국에서 냉장고의 새로운 냉매로 염화불화탄소(CFC), 즉 프레온을 개발하는 데 참여했다. 이후 듀폰 잭슨 연구소에서 주방용품에 주로 사용되는 코팅제인 테플론을 개발했다. 1969년 한국 정부의 해외 한국인 과학기술자 유치 사업으로 입국한 그는 프레온 생산 공장 등의 국산화를 추진했다.
고 최남석 LG화학 기술연구원 원장은 ‘한국 바이오산업의 전설’로 불린다. 그는 서울대 화학공학과 졸업 후 미국 벤처기업 알자(ALZA)에서 약물 전달 효과를 높이는 고분자 물질인 ‘크로노머’를 개발했다. 1980년 럭키중앙연구소 소장을 맡은 그는 미래 신성장 동력 사업으로 신약을 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최고 인재들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때 LG 출신들이 바이오벤처를 창업하며 연구를 이어갔고 현재의 ‘K바이오’ 혁신을 이끌어가고 있다.
박성현(79) 서울대 명예교수는 국내에 현대 통계학을 도입하고 통계적 품질관리 등을 적용해 생산성 향상에 기여했다. 1977년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교수로 부임한 그는 국내외 학술지에 200여 편의 논문, 80권이 넘는 통계학 저서를 발표하는 등 국내 통계학 학문 체계를 확립한 세계적 석학으로 꼽힌다. 또한 기업들에 통계적 품질관리에 대한 컨설팅을 진행해, 대량생산 체제에서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높였다.
이서구 (81)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세포 신호전달 연구의 선구자로서, ‘산화환원 생물학’ 분야를 개척했다. 그는 1980년대 세포 내 신호전달의 기본 물질인 인지질 분해 효소를 처음으로 발견하고 그 역할과 작용을 알아냈다.
채영복(87) 원정연구원 이사장은 수입에 의존하던 의약품과 농약 등 정밀화학 제품의 국산화에 기여해 관련 산업 발전 토대를 마련했다. 2002~2003년 제4대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큰 과학기술인을 유공자로 지정하는 제도. 과학기술 유공자 예우 및 지원법을 근거로 2017년부터 시행됐다. 자연, 생명, 엔지니어링, 융합·진흥 등 4분야에서 올해를 포함해 총 91명이 유공자로 지정됐다. 유공자는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헌액, 국가 과학기술 정책 수립에 관한 자문, 출입국 심사 우대 등 예우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