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분야의 원로들이 윤석열 정부가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를 추진했지만 일선 현장에서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원자력 인력이 여전히 부족하고 원전 확보 계획도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원자력 규제도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원자력원로포럼은 3일 오전 서울 강남 한국과학기술회관 아나이스홀에서 ‘윤석열 정부의 원자력 훈풍과 체감온도’를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이날 80여명의 원자력 분야 관계자가 모였다.

과학기술부 원자력국장을 역임한 이헌규 원자력원로포럼 의장은 이날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를 선언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도 벌써 임기 절반을 지나고 있지만, 일선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은 아직도 탈원전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 의장의 인사말로 시작된 포럼은 1시간 반에 걸쳐 윤석열 정부의 원자력 정책에 대한 성토의 장으로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월 30일 경북 울진군 한국수력원자력 한울원자력본부에서 열린 '신한울 원전 1·2호기 종합준공 및 3·4호기 착공식'에 참석해 방명록을 남기고 있다./대통령실

박군철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는 주제 발표에서 “윤석열 정부 들어 탈원전 정책의 일부는 철회됐지만, 여전히 미온적이고 실질적 개선은 부족하다”며 “신한울 1·2호기의 준공과 3·4호기 착공은 의미 있는 진전이지만, 차세대 원자로와 관련해 개발 예산을 삭감한다거나 인력 수급이 부족해 체감 온도는 여전히 낮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원전사업에서 2030년까지 4500명의 추가 인력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탈원전 시기 동안 구조조정을 겪은 산업계는 여전히 인력 부족과 기술력 손실을 회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중장기적인 인력 수급 계획과 고급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기초 연구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원자력 산업 지원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안정적인 정책 기조를 위해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 2050년까지 중장기 로드맵을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며 “정권 교체 시 정책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원자력 부흥의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탈원전 정책을 반대하기 위해 설립된 사실과과학네트워크의 박기철 회장은 “윤 정부에서 탈원전 정책 철회를 기대했지만, 문재인 정부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 비율은 10%에도 못 미친다”며 “원전 부지 주민들은 추가 건설을 원하지만, 행정적 규제로 인해 사업 진행이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신한울 3·4호기 공사를 당초 53개월로 계획했지만, 정부의 간섭으로 73개월로 늘어났다”며 “전 세계적으로 원전을 10년 안에 완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한국이 이렇게 뒤처지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11차 전력 수급 계획에서 SMR(소형모듈원자로) 1기와 원전 3기를 포함했지만, 최소 10기가 들어가야 정상적인 복구라 볼 수 있다”며 “15년이 걸리는 원전 건설 계획을 대폭 단축해야 하고, 이를 위해 문재인 정부 시절 중단된 삼척과 영덕 부지를 복구해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첫걸음”이라고 했다.

박군철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가 3일 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제3회 원자력 원로 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다./홍아름 기자

김균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위촉연구원은 원전 규제 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비효율적인 운영과 규제 시스템을 비판했다. 그는 원안위에서 비상임위원을 맡고 있다. 김규태 위원은 “계속 운전과 주기적 안전성 평가(PSR)가 분리되지 않아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다”며 “평가 기간을 10년에서 20년으로 확대하는 등 유연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고리 2호기의 허가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도 비효율 사례라고 했다. 그는 “고리 2호기의 운영 허가 건이 단순 서류 제출 지연 문제로 검찰에 고발됐다”며 “원안위가 과도하게 규제에만 치우쳐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고 했다. 그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규제 체계가 필요한데. 원안위가 탈원전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원자력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 인식이 높아지고 있으나, 여전히 안전성에 대한 신뢰는 부족한 만큼 국민 설득이 원자력 산업의 부흥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박군철 교수는 “여전히 국민 30%가 원자력의 안전성에 동의하지 않는 상황에서 안전성을 알리는 홍보와 교육이 절실하다”며 “국민이 원자력의 안전성을 확신하지 못하면 신규 건설은 물론 계속 운전조차도 추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기철 회장은 “신고리 원전 추가 건설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사례처럼, 지역 주민들은 원자력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며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부지 확보를 추진하고, 지역 사회와 소통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