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알츠하이머병 세포 모델을 연구해 온 한인 과학자가 치료제 개발 속도를 약 9배 빠르게 할 기술을 개발했다. 10년 전 개발한 ‘접시 속 알츠하이머병’이라고 불리는 세포 배양 기술과 최신 생물정보학을 적용한 검증 플랫폼(기반 기술)을 더해 알츠하이머병 약물 후보 물질을 빠르게 찾아내는 기술이다. 기존 1년 이상 걸리던 효과 검증 실험을 단 6주 만에 끝낼 수 있다.
김두연 미국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이 국제 학술지 ‘뉴런’에 알츠하이머병을 모사하는 3차원(D) 세포 모델이 실제 환자의 뇌와 얼마나 닮았는지 분석하는 플랫폼을 개발했다고 28일 밝혔다.
김 교수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 약물을 빠르게 발굴하고, 이를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기술”이라며 “신약 개발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를 일으키는 주요 질병이다. 알츠하이머병은 뇌 신경 세포를 보호하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덩어리를 만들어 오히려 신경세포를 죽여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밀로이드 베타가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인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아밀로이드 베타를 이용한 알츠하이머병 진단법은 여전히 널리 사용 중이다.
김 교수는 세포를 배양해 환자의 알츠하이머병 상태를 그대로 재현하는 세포 모델을 2014년 처음 개발했다. 이 세포 모델은 인간의 신경 세포가 3D로 분화한다는 점에서는 ‘미니 장기’로 불리는 오가노이드와 비슷하지만, 세포 사이를 투명한 젤로 채웠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젤에는 아밀로이드 베타 덩어리가 침착돼 오가노이드보다 빠르고 정확한 알츠하이머병 모델로 주목 받았다. 김 교수는 이 세포 모델에 ‘접시 속 알츠하이머병’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김 교수는 당시 연구로 미국 스미소니언 재단이 수여하는 ‘독창성상(Smithsonian Ingenuity Award)’을 수상하면서 성과를 인정 받았다. 김 교수는 “오가노이드나 동물 실험은 알츠하이머병 효과를 시험하는 데 1년 이상이 걸린다”며 “당시 개발한 세포 모델을 사용하면 6주 만에 효과 확인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알츠하이머병 정복을 목표로 이후에도 꾸준히 연구해왔다. 2018년에는 박요셉 MGH 연구원, 조한상 성균관대 교수와 공동 연구로 뇌의 노폐물을 배출하는 미세아교세포를 포함하는 모델을 만들었다. 미세아교세포는 차세대 알츠하이머병 치료 타겟으로 최근 주목 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곽상수 MGH 연구원과 함께 혈액 면역세포를 융합한 3D 뇌 장기칩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세포 모델을 이용한 알츠하이머병 연구는 아직 많지 않다. 실제 환자의 뇌와 얼마나 비슷한지 검증하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포 모델은 아밀로이드 베타의 축적은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최근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하는 요인이 다양해지면서 이를 모두 검증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해졌다.
연구진은 세포의 유전자 발현 양상과 세포 모델을 결합해 질병 분석 플랫폼 ‘IPAA’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IPAA는 실제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서 발현되는 유전자와 3D 세포 모델의 기능적 이상을 비교해 인간의 뇌 질환을 가장 잘 반영하는 모델을 찾는 도구다.
IPAA를 사용해 3D 세포 모델이 알츠하이머병 환자와 얼마나 닮았는지 확인한 결과, 공통적으로 뇌 신경회로 중 83개가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포를 배양해 만든 덩어리가 실제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와 닮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세포 모델에 약물을 처리했을 때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확인하는 데도 사용할 수 있다.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의 새로운 후보 물질도 찾아냈다. PF-3644022와 ATI-450이라고 이름 붙은 이 물질은 3D 세포 모델에 쌓인 비정상적인 타우 단백질을 제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타우 단백질을 아밀로이드 베타와 함께 신경세포를 죽이는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꼽힌다.
김 교수는 다른 용도로 허가 받은 약물 중 알츠하이머병 치료 효과가 있는 물질도 찾고 있다. 미 식품의약국(FDA)이 허가한 약물을 세포 모델에 주입하고 세포 기능이 얼마나 회복되는지 확인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이미 안전성을 검증한 약물을 이용하면 이전보다 빠른 속도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를 찾을 수 있다. 실제로 근이영양증 치료제로 개발되던 ‘로스마피모드(Losmapimod)’를 사용했을 때 알츠하이머병 증상이 다소 완화되는 것도 확인됐다.
김 교수는 “지난 10년간 알츠하이머병 세포 모델을 연구하면서 꾸준히 개선점을 찾고 새로운 연구를 했다”며 “기존 약물 중 알츠하이머병에 효과 있는 물질을 빠르게 찾아내 환자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Neuron(2024), DOI: https://doi.org/10.1016/j.neuron.2024.10.029
Nature(2014), DOI: https://doi.org/10.1038/nature13800
Nature Neuroscience(2018), DOI: https://doi.org/10.1038/s41593-018-0175-4
Nature Communications(2020),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0-15120-3
Nature Neuroscience(2023), DOI: https://doi.org/10.1038/s41593-023-014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