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발표된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은 모두 인공지능(AI)을 연구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노벨 물리학상은 머신 러닝과 인공신경망 기술을 개발한 존 홉필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와 제프리 힌튼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가 받았다. 노벨 화학상은 단백질 구조 예측 AI를 만든 구글 딥마인드 연구진과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가 받았다.
12일 고려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노벨 메모리얼 심포지엄에서 올해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의 성과를 되돌아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자리에 모인 한국과 스웨덴의 전문가들은 “AI는 노벨상을 받을 만큼 이미 일상적이면서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면서도 “아직 그 안의 작동 메커니즘이 다 밝혀지지 않은 만큼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노벨상 발표 직후 과학계에는 논쟁이 일었다. 전통적인 물리, 화학 분야가 아닌 AI 분야 연구자가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노벨 위원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딥 러닝과 인공신경망 기술이 물리학을 기반으로 나왔다”고 설명했으나 논란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독일의 물리학자인 사빈 호센펠더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홉필드와 힌튼의 연구는 컴퓨터 과학 분야에 속한다”며 “노벨상은 물리학자가 주목받을 수 있는 드문 기회인데 올해는 그렇지 못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심포지엄에서 노벨 물리학상에 대해 강연한 윤건수 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는 “존 홉필드 교수는 AI 과학을 물리학이라는 범주 내에서 처음 연구하기 시작한 분이라고 생각한다”며 “물리적 현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나 자연 현상에 대한 물리적인 발견이 아니지만, 물리학상을 받는 것이 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원주율 값을 계산하기 위해 원과 둘레 길이가 비슷한 다각형을 그려가며 계산했지만, 뉴턴이 대수학을 발견하면서 원주율 값을 더 빨리,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었다”며 “대수학의 역할을 AI가 해주지 않을까 한다. 물리학계에서도 능동적으로 AI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요한 록베리 스웨덴 왕립공과대 교수 역시 “AI로 단백질의 구조를 예측하고 새로운 단백질을 디자인할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길이 열렸다”며 “위협이라기보다는 화학 분야를 발전시킬 도구가 나타났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의학, 환경, 공학 분야에서도 새로운 연구가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심포지엄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AI가 노벨상에 선정될 만큼 강력한 도구이지만 현명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록베리 교수는 “AI라는 블랙박스가 답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며 “어떻게 이 결과가 나왔는지,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윤 교수는 “AI가 혹시라도 틀린 정보를 알려줄 때를 대비해 사용자들이 좋은 질문을 하도록 교육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이날 강연자를 중심으로 한 패널 토론에서는 AI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윤 교수는 “AI가 전기를 과도하게 소비하는 게 맞고, 어떻게 보면 AI 발전에 있어서 병목현상 요인으로도 꼽힌다”며 “더 많은 연구를 통해 기술이 발전하면서 에너지 소비량을 최소화할 수 있을 거라 본다”고 답했다. 록베리 교수는 “AI를 모든 과제에 대해 사용하는 건 효율적이지 못하다”며 “AI 가지고 놀 생각만 하지 말고, 지속 가능한 방식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