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스웨스턴대가 이끄는 국제 연구진이 피부를 자극해 다양하고 복잡한 감각을 전달하는 새로운 종류의 웨어러블(wearable·착용형) 기기를 개발했다.
존 로저스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 연구진은 7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시각 장애인이 주변 환경을 느끼거나 팔다리에 의수(義手)를 장착한 사람이 촉각을 인지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로저스 교수는 몸에 달라붙는 전자회로로 생체정보를 얻는 바이오일렉트로닉스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그는 2019년 가상현실(VR) 기술에 촉각을 더할 수 있는 ‘표피 VR’을 개발했다. 가로·세로 15㎝ 크기의 얇고 부드러운 소재에 소형 진동 구동장치가 배열된 형태였다. 당시 연구진은 이를 활용하면 세계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손을 잡고 있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네이처 논문은 표피 VR을 실제 촉각과 더 비슷하게 개선한 결과이다. 논문 공동 제1 저자인 김진태 포스텍 기계공학과 교수는 조선비즈에 “2019년 연구 결과는 잘 휘어지는 유연 소재와 햅틱(haptic, 촉각)을 융합해 큰 스케일로 만든 첫 장치였다”며 “이번에는 실제 감각 기관이 단순한 진동을 넘어서서 찢어지는 듯한 느낌 같이 다양한 감각을 느끼는 것을 반영해 사실감을 더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장치는 얇고 유연한 실리콘 그물망 소재에 19개의 작은 자기 구동장치가 육각형을 이루며 배열된 형태다. 각 구동장치는 압력이나 진동, 비틀림과 같은 감각을 전달할 수 있다. 연구진은 스마트폰의 블루투스(근거리 무선통신)를 사용해 시각과 같은 주변 환경에 대한 데이터를 표피 VR에 전달해 촉각으로 바꿀 수 있도록 했다.
장치는 작은 배터리로 구동되지만, 마치 고무줄을 늘여 탄성 에너지를 저장하듯 구동장치 내부에 에너지를 저장해뒀다가 사용하도록 했다. 덕분에 지속적으로 전력을 공급하지 않아도 오랫동안 장치를 사용할 수 있다.
연구진은 실험 대상자들의 눈을 가리고, 이번에 개발한 장치를 목 뒤쪽 아래에 장착했다. 그리고 장치가 시각적인 정보를 기계적인 정보로 전달하도록 했다. 이후 이동 경로에 있는 물체를 피하는지, 부상을 피하고자 발의 위치를 바꿀 수 있는지, 균형을 위해 자세를 바꿀 수 있는지 시험했다. 그 결과 짧은 훈련만으로도 장치를 사용하는 실험 대상자들이 주변 환경에 맞춰 실시간으로 행동을 바꿀 수 있었다.
로저스 교수는 “시력에 의존하지 않고도 주변 환경에 대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며 “시각 장애가 있는 개인에게 유용한 기능”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얇고 유연한 이 장치는 피부에 부드럽게 부착돼 현실적이고 몰입감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며 “의료분야는 물론 게임이나 가상현실(VR)에도 적합하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4-0815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