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비영리 대변은행 오픈바이옴이 제공하는 질병 치료용 대변 추출물.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환자에게 이식하는 '대변 이식'은 장 내 박테리아(세균) 감염에 효과가 우수하지만, 샘플 오염으로 인한 사망 사고가 이따금 발생하고 있다./오픈바이옴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13년 대변 이식 치료를 조건부 허용했다.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Clostridioides difficile)균에 감염된 장염 환자 중 항생제가 듣지 않으면 대변으로 건강한 사람의 장내 미생물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여러 나라가 대변 이식을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인정했지만, 대변을 이식 받은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카렐 아담버그 에스토니아 탈린기술대 교수와 데니스 닐슨 덴마크 코펜하겐대 교수 연구진은 6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아이사이언스’에 “기증 받은 대변을 발효해 대변 이식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똥이 발효되면서 비료가 아니라 안전하고 효과적인 약이 된다는 말이다.

장내 미생물은 소화되지 못하는 물질을 대신 분해하거나 외부 병원균이 침입했을 때 제거하는 역할을 하며 숙주와 공생한다. 이런 장내 미생물이 부족하거나 건강하지 않다면 병원성 박테리아에 감염되고 대사 질환에 취약해진다. 과학자들은 건강한 장내 미생물로 세균 감염과 대사 질환을 치료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FDA가 디피실균 감염증 치료로 허가를 받은 대변 이식이다. 디피실균에 감염되면 설사나 발열에 시달리고, 심하면 백혈구의 수가 늘어나 면역계에 이상이 생기거나 탈수, 혈변 증상까지 나타난다. 디피실균은 항생제를 써도 내성이 있어 치료 효과가 떨어지고 재발률이 높다.

하지만 대변 이식도 부작용 문제는 피할 수 없다. 대표적인 사례는 2019년 미국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다. 당시 대변 이식 치료를 받은 디피실리균 감염 환자 2명 중 1명이 사망하고, 다른 1명은 혼수상태에 빠진 것이 알려지면서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닐슨 교수는 “대변 이식은 디피실균 감염증 환자 중에서도 생명에 위협을 받는 경우에만 사용된다”며 “대변을 기증한 사람마다 장내 미생물군이 달라 표준화가 불가능하고, 대변 자체가 오염돼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발효를 통해 치료 효과가 큰 장내 미생물군과 박테리오파지만 선별 배양하는 기술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했다. 박테리오파지는 유해한 박테리아에 감염돼 증식을 억제하고 유익한 박테리아의 증식은 돕는 역할을 한다. 앞서 중국 홍콩대 연구진은 2018년 박테리오파지인 카우도비랄레스가 환자에서 디피실균의 증식을 억제하고 유익균의 증식을 돕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발효는 미생물에게 영영분을 줘 증식하는 과정이다. 주로 동물의 대변을 비료로 만들거나 유산균을 이용한 음식을 만들 때 활용된다. 발효 조건을 조절하면 특정 미생물만 증식할 수 있다. 연구진은 대변 발효를 통해 치료용 장내 미생물을 표준화할 수 있다고 봤다.

먼저 배양장치에서 기증 받은 대변을 발효시켰다. 배양 조건은 사람의 장과 비슷하게 설정하고, 주기적으로 미생물의 대사 산물을 측정해 장내 미생물군의 비율을 확인했다. 이후 대변 성분을 제거하고 장내 미생물만 선별해 치료제로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치료제는 디피실균 감염증을 앓는 생쥐와 비만으로 당뇨병을 가진 생쥐에게 각각 투여했다. 실험 결과, 디피실균 감염증 생쥐 8마리 중 5마리가 완치됐으며 별다른 부작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당뇨병 생쥐는 혈당 수치가 낮아지고, 일부 생쥐에서는 체중 감소 효과도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대변 이식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장내 미생물군의 표준화가 어려웠던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닐슨 교수는 “대변에 포함된 병원성 바이러스가 부작용의 원인”이라며 “발효 과정은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는 인간 세포가 포함되지 않아 바이러스를 억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변 이식은 최근 대변 자체를 이식하지 않고, 치료 효과를 내는 물질만 선별해 의약품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진화 중이다. 앞서 호주와 미국 정부는 각각 2022년 11월과 12월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이용해 만든 의약품을 허가했다. 호주는 마이크로바이옴 기업 바이옴뱅크가 개발한 ‘바이오믹트라’를, 미국은 스위스 페링제약의 ‘리바이오타’를 각각 승인했다.

모두 건강한 사람의 대변에서 유익한 미생물만 추출해 환자의 대장에 직접 주입하는 의약품이다. 대변 발효는 대변 의약품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다. 닐슨 교수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발효 조건을 달리해 대변 이식을 맞춤형 의약품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며 “이를 통해 기존 의약품처럼 표준화가 가능해지고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iScience(2024), DOI: https://doi.org/10.1016/j.isci.2024.110460

Nature communications(2024),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4-49152-w

Gut(2017), DOI: https://doi.org/10.1136/gutjnl-2017-313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