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은 인구 10만명당 마약사범 20명을 넘지 않는 국가를 마약청정국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 2016년 인구 10만명당 마약사범 25명을 기록하면서 마약청정국 지위를 잃었다. 정부는 마약청정국 지위를 되찾기 위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으나, 국내 마약사범은 여전히 늘고 있다. 대검찰청이 지난 6월 발간한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마약사범은 2만7611명이다. 국내 인구를 5100만명으로 가정했을 때 마약사범은 인구 10만명당 54명에 달한다.

마약 문제를 해결하려면 마약의 국내 유통과 사용을 차단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경찰이 현장을 덮쳤을 때 신속하고 정확하게 마약을 확인할 수 있는 감지 센서 기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명성 한국화학연구원 박막재료연구센터장은 10년 가까이 마약 감지 센서를 연구해 온 과학자다. 다부처 사업으로 6년, 경찰청 사업으로 3년을 연구한 끝에 14종 이상의 마약류를 감지할 수 있는 센서 기술을 개발했다.

명성 한국화학연구원 박막재료연구센터장은 국내 연구진들과 협력해 항원-항체 반응을 이용한 마약 감지 센서를 개발했다. 항체를 이용해 마약 성분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다./대전=이병철 기자

명 센터장은 지난 22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연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실험에 쓸 마약을 구하기 힘들어 1년 6개월이나 걸렸다”며 “어렵게 마약을 구해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항원-항체 반응’을 이용한 감지 센서를 개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항원-항체 반응은 박테리아(세균),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한 동물의 면역 시스템 중 하나다. 항체가 외부에서 들어 온 병원체(항원)와 결합하고, 면역세포로 공격해 파괴하는 식이다.

항원-항체 반응의 가장 큰 장점은 높은 정확도다. 마약을 직접 감지하는 것보다 마약과 반응하는 항체를 이용하면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항체를 이용한 센서 기술의 대표적인 사례는 임신테스트기다. 임신테스트기는 임산부의 소변에 섞여 나오는 호르몬과 반응하는 항체를 이용해 95% 이상의 정확도로 임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명 센터장은 “항원-항체 반응은 바이오 센서에서 정확도를 높이는 데 이미 활용 중인 방법”이라며 “마약 항체는 실제 동물의 항체처럼 단백질로 이뤄지지는 않았으나, 항체의 기능을 모사해 마약 성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명 센터장을 비롯해 여러 연구기관과 대학 연구자들이 합심한 연구진은 마약 항체를 플랫폼(기반 기술)으로 삼아 여러 종류의 센서를 개발했다. 그는 “마약 감지 센서는 수사 기관이 단속을 하는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종류의 센서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명성 한국화학연구원 박막재료연구센터장이 개발한 전기화학식 마약 감지 센서.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간 마약 성분을 감지할 수 있다./대전=이병철 기자

가령 마약을 해외에서 밀수입하는 경로인 공항, 항만에서는 공기 중의 마약 성분을 포착하는 기체 센서 기술이 필요하다. 반면 성범죄에 사용하는 GHB, 일명 물뽕을 검거할 때는 액체류에 섞인 마약 성분을 잡아내는 액체 센서가 필요하다. 각각의 상황에 맞는 센서에 항체를 결합하면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항체 기술은 마약 감지 센서의 정확도뿐 아니라 감지율을 높이는 데도 활용된다. 특히 극소량의 마약을 찾아야 하는 기체 센서에서 감지율의 중요성은 더 크다. 실제로 마약 탐지 기술의 발전에도 센서의 감지율은 마약탐지견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명 센터장은 “마약탐지견 수준의 성능을 센서로 구현하는 것은 현재로서도 불가능하다”며 “인공지능(AI)을 이용하려는 시도도 있으나 아직 성능이 입증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마약탐지견이 감지할 수 있는 공기 중 마약 농도는 ppt(1조 분의 1) 수준으로 알려졌다. 반면 기존 마약 감지 센서는 ppm(100만 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항체를 이용하면 공기 중 마약 농도를 ppb(10억 분의 1)까지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 명 센터장의 설명이다.

그는 “마약탐지견 한 마리를 키우는 데 드는 비용도 상당하고 과도한 스트레스로 수명도 짧다”며 “마약 탐지 센서의 감지율을 개선한다면 마약탐지견을 대체해 사회적 비용도 줄이고, 동물 복지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명 센터장은 국내 마약 탐지 기술을 더욱 키우려면 연구 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연구진이 마약 센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느낀 어려움 때문이다.

명 센터장은 “마약 연구를 처음 시작했을 당시 실험에 쓸 마약을 구할 방법이 없어 1년이 넘도록 제대로 된 연구를 하기 어려웠다”며 “우여곡절 끝에 세관이 압수한 마약류를 일부 제공받았으나, 그마저도 품질이 일정치 않아 정교한 센서를 구현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법상 연구자들이 합법적으로 마약을 구할 방법은 없다. 의료용으로 사용하는 일부 마약성진통제는 허가를 받아 구매할 수 있으나 필로폰, 펜타닐처럼 순수 마약성 물질은 합법적으로 생산하는 곳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세관이 제공하는 압수 마약을 사용하는 데도 한계가 크다. 마약 단속 중 나타날 수 있는 여러 상황을 재현하려면 많은 양의 약물이 필요하지만, 한 번에 구할 수 있는 마약의 양은 수㎎에서 수십g에 불과했다. 비교적 소량의 샘플이 필요한 기체 센서 개발에는 충분한 양이지만, 액체 센서를 연구할 때는 실험 한번에 대부분의 마약이 사용됐다.

명 센터장은 “센서 연구를 처음 시작했을 당시 미국에서 펜타닐이 들어오기 시작했으나, 샘플을 구할 방법이 없어 연구를 할 수 없었다”며 “탐지 기술이 마약 유행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운 이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