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장에서 공생하는 다양한 미생물들이 컬러로 표현된 현미경 사진./Eye of Science

인간의 장에서 미생물들이 치열하게 경쟁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일부 박테리아(세균)들은 독침을 사용해 적을 공격하고, 새로운 DNA를 획득해 동료를 배신하기도 했다.

미국 시카고대가 주도한 국제 연구진은 24일 “인체의 장내 미생물들이 독소 무기로 상대를 무력화시키고 다른 세균의 유전자를 가져와 새로운 무기를 획득해 생존 범위를 넓힌다”고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했다. 숙주인 인간의 전쟁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장내 미생물군은 인간이나 동물의 소화기관에 사는 미생물 군집을 말한다. 로리 컴스탁 시카고대 교수는 “인간의 대장은 지구에서 가장 밀도가 높은 미생물 생태계 중 하나”라고 표현했다. 최근 장내 미생물 군집의 구성이 다양한 질병과 연관 관계가 있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으나, 어떻게 장내 미생물 군집의 구성이 바뀌는지는 미지수다.

연구진은 장내 미생물들이 서로 경쟁하는 과정에서 군집 구성이 바뀐다고 봤다. 실제로 일부 박테리아가 다른 박테리아와 경쟁하기 위해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발견했다. 마치 마취총처럼 스프링이 장착된 무기로 다른 세균이나 세포에 독을 주입했다. 이 무기는 유기체가 매우 가까이 있을 때 작동했다. 박테리아의 무기는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않고 발사됐다. 다만 같은 무기를 가진 박테리아들은 해독제를 만들 수 있는 유전자가 있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장내 미생물은 박테로이데스 프라질리스(Bacteroides fragilis)였다. 이 박테리아는 유전자 GA3를 기반으로 한 무기로 끊임없이 독을 발사하며 다른 박테리아들을 공격했다. 연구진은 “박테로이데스 프라질리스는 장의 점액질 내벽에서 발견되는 복합 당을 먹이로 한다”며 “점액질 내벽을 점령하고 다른 관련 종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더 공격적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일부 박테로이데스 프라질리스는 다른 박테리아로부터 GA1 유전자 조각을 전달받아 아군을 배신하기도 했다. 유전자 GA3 대신 GA1으로 신무기를 만들면 GA1이 없는 같은 종 박테리아까지 공격했다. 이렇게 새로운 무기를 받은 박테리아들은 생존 경쟁에서 더 유리했다.

연구진은 “박테리아 세계에서 독침 무기를 기반으로 한 전쟁과 배신이 예상보다 더 빈번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박테리아는 DNA 이동을 통해 진화할 수 있다”며 “이번 연구는 박테리아가 장 속에서 어떻게 서로 경쟁하고 살아남는지, 장내 생태계에서 DNA 이동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려준다”고 설명했다.

참고 자료

Science(2024),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j9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