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금리 인하와 중국의 경기 부양책 등으로 글로벌 금융시장 여건이 개선되는 가운데, 제약·바이오 기업 투자가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도 최근 제약·바이오 업계의 인수·합병(M&A)이 활발해지면서 전반적인 투자 심리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그래픽=양진경

◇바이오 ‘메가 라운드’ 성장세

글로벌 바이오 업계에 ‘메가 라운드’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메가 라운드는 한 번에 1억달러(약 1300억원) 이상을 조달하는 투자 단계를 의미한다. 세계 바이오 업계 투자 규모는 지난 2020~2021년 코로나 팬데믹과 초저금리 기조 당시에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다 2022년 급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올해 8월 31일 기준 메가 라운드를 유치한 미국의 바이오 기업 수는 68곳으로 집계됐다. 이미 작년(59곳) 수치를 뛰어넘은 것이다. 이 추세가 이어지면 71건의 바이오 기업 메가 라운드가 발생했던 2022년 기록도 무난히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WSJ는 “금융 업계 ‘큰손’들이 바이오 기업에 잇따라 투자하면서 더 많은 임상 시험이 가능한 여건이 됐다”고 했다. 신약이 출시되기 전에 자금이 떨어지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바이오 스타트업들이 걱정을 덜게 됐다는 것이다.

다만 바이오 투자 광풍이 불던 2021년 수준을 회복하진 못한 상태다. 올해 상반기 글로벌 벤처 투자(VC) 기업들은 351개 바이오 스타트업에 153억달러(약 21조원)를 투자했다. 이는 845개 기업에 366억달러(약 50조원)가 들어간 2021년의 절반에 못 미치는 규모다.

최근의 바이오 투자는 2020~2021년과는 달리 조심스러운 경향을 보인다는 분석도 나왔다. 메가 라운드가 이뤄져도 투자금을 해당 바이오 기업에 한 번에 다 주지 않고, 기술 개발 단계마다 나눠서 지급하는 투자자가 많다는 것이다. 제약·바이오 전문 투자 기업인 RTW인베스트먼트 관계자는 “요즘 투자자들은 예전보다 더 오랫동안 고심한다”며 “최근에는 기업 실사도 더욱 철저히 하고, 변별력을 갖고자 노력한다”고 했다.

지난 9월 미국이 금리 인하를 시작한 것은 바이오 업계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달 국가신약개발사업단이 낸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로 하반기 방사성 의약품 등 시장에서 대규모 바이오 기업 인수 합병(M&A)이 기대된다. 최근의 AI(인공지능) 열풍도 바이오 기업에 호재다. AI를 활용해 신약 개발 속도가 빨라졌을 뿐 아니라, AI 기술을 보유한 바이오 관련 기업에 투자하려는 자금이 대거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도 투자 활기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도 잇따라 투자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 7일 체외 진단 기기 기업 ‘프리시젼바이오’의 최대 주주가 아이센스에서 광동제약으로 변경됐다. 광동제약은 지난 7월 개인 맞춤형 헬스케어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아이센스에서 프리시젼바이오 지분 28.2%를 약 160억원에 매수했다.

동화약품도 지난달 미래에셋벤처투자PE와 함께 미용 의료 기기 기업 하이로닉의 지분 57.8%를 1600억원에 매수했다. 동화약품의 하이로닉 인수 절차는 현장 실사 등을 거쳐 연말 마무리될 예정이다.

제넥신은 지난 17일 표적 단백질 분해제 전문 기업인 이피디바이오테라퓨틱스에 대한 인수 절차를 완료했다. 이피디바이오 최재현 대표이사는 앞으로 제넥신에서 연구 개발(R&D)을 총괄하게 된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 8일 미국의 R&D 전문 바이오 기업 ‘피나 바이오 설루션스’에 300만달러(약 41억원)를 투자해 지분 일부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피나 바이오는 폐렴구균, 장티푸스 등 백신 개발에 필요한 단백질 운반체 제조 기술을 보유했다. 국내 한 바이오 투자 전문 VC 관계자는 “작년에 비하면 제약·바이오 투자 상황이 좋아진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탄탄한 기업 위주의 대규모 투자는 늘어나는 반면, 모험적인 투자는 여전히 위축되어 있어 장기적 가능성보다 현재 실적을 더 중요하게 보는 투자자가 많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