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 큐어버스 대표가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탈리아 제약사와 500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이번 계약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개발한 기술을 바탕으로 이뤄졌다./이병철 기자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창업기업이 개발한 먹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가 이탈리아 제약사에 기술수출된다. 총 계약 규모는 3억7000만달러(약 5000억원)로 출연연 창업기업 기술수출로는 최대 규모다. 주사로 투약하는 대부분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와 달리 먹는 약으로 복약 편의성을 높였고, 이전에 없던 새로운 방식의 치료법으로 큰 가치를 인정 받았다.

조성진 큐어버스 대표는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탈리아 제약사 안젤리니파마와 알츠하이머병 신약 후보 물질 ‘CV-01′의 글로벌 판권 계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큐어버스는 난치성 뇌 질환 치료를 위한 저분자 화합물 기반 신약을 개발하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기술출자기업이다. 박기덕 KIST 뇌질환극복연구단장 연구진은 2014년부터 차세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를 연구한 끝에 신약 후보 물질 ‘CV-01′을 개발했다. 최근 개발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대부분이 뇌 신경세포를 파괴하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덩어리를 없애는 방식이라면, CV-01은 염증을 억제해 신경세포의 손상을 막는 약물이다.

박기덕 단장은 “CV-01은 목표 단백질에 정확히 결합해 효능이 우수하면서 부작용도 낮다”며 “동물 실험과 뇌 조직 실험에서 아밀로이드 베타 덩어리가 형성되지 않는 예방 효과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2021년 큐어버스를 창업하고 이듬해인 2022년 KIST가 개발한 CV-01을 이전 받았다. 동물과 세포를 이용한 비임상 시험을 마쳤으며, 지난해부터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보건복지부의 지원 사업에 선정돼 서울대병원에서 임상 1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이번 계약으로 이탈리아 제약사인 안젤리니파마는 CV-01의 개발과 글로벌 판권을 확보했다. 큐어버스는 한국과 중국에 대한 판권을 갖고 자체 개발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큐어버스는 2026년 임상 2상 시험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CV-01이 글로벌 제약사의 주목을 받은 이유는 산화 스트레스로 인한 신경염증을 억제해 알츠하이머병을 치료·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시장은 최근 아밀로이드 베타 덩어리를 제거하는 방식의 신약 개발이 활발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에자이와 바이오젠이 공동개발한 레켐비다. 레켐비는 항체 의약품으로 지난해 7월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으며 주목 받았다. 이후 일라이 릴리의 키순라까지 정식 출시됐으나, 부작용 관련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CV-01은 신경 염증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알츠하이머병뿐 아니라 파킨슨병, 뇌전증 치료에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CV-01은 산화 스트레스와 염증으로 인한 신체 손상을 막는 회로인 ‘Keap1/Nrf2′를 활성화한다. 이 회로가 작동하지 않으면 뇌 세포에 염증이 쌓여 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병 같은 뇌질환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먹는 약으로 개발돼 복약 편의성을 개선했다는 장점도 있다. 주사 투약 방식은 환자가 병원에 자주 방문해야 해 사용 범위가 제한된다. 반면 먹는 약은 의료진의 처방에 따라 정해진 양을 집에서 손쉽게 복용할 수 있다. 알츠하이머병 치료 편의성을 크게 개선하면 기존 치료제보다 더 큰 시장을 만들 수 있다.

조성진 대표는 “정부의 지원 사업과 출연연 연구진의 기술의 도움을 받아 창업 3년 만에 빠르게 압도적인 실적을 냈다”며 “이번 계약을 계기로 산·학·연 클러스터 기반 연구개발(R&D)의 확대가 이뤄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