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로저스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가 17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한국화학공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한국과학기자협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과 인공지능(AI) 머신 러닝이 소프트 일렉트로닉스(soft electronics) 분야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 앞으로 발전이 더욱 빨라질 것이다.”

존 로저스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17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한국화학공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자신의 연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소프트 일렉트로닉스는 고분자 물질과 전자 회로를 결합해 얇고 잘 휘어지는 센서를 개발하는 분야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핵심 기술로 갈수록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로저스 교수는 이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소프트 일렉트로닉스 중에서도 동물 모델이나 생체 조직에 직접 융합할 수 있는 소자를 만드는 ‘바이오 일렉트로닉스’에 집중하고 있다. 피부에 붙여 생체 정보를 수집하는 전자피부가 대표적 사례다.

로저스 교수는 이날 한국화학공학회 기조연설에서 땀 속 바이오마커(생체지표)를 분석하는 혁신적인 웨어러블(wearable·착용형) 기술을 소개했다. 밴드같이 생긴 기기를 붙이는 것만으로도 포도당, 염화물, 젖산, 산도(pH)와 같은 지표를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다. 실시간으로 건강에 이상이 있는지, 운동 중 수분 보충이 필요한지 파악할 수 있다.

2018년 에피코어 바이오시스템은 펩시코의 스포츠 음료 브랜드인 게토레이와 땀 속 전해질의 변화를 측정하고, 실시간으로 필요한 이온 음료의 양을 알려주는 운동선수용 전자피부인 ‘지액스(Gx)’를 내놓았다. 에피코어는 로저스 교수가 창업했다. 에피코어는 2020년 지액스를 코로나19 환자와 의료진에게도 적용했다.

로저스 교수는 “요즘은 산모나 신생아, 아동의 건강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웨어러블 소자를 개발하고 있다”며 “기존 기술들은 테이프 같은 소재를 사용하거나 비싼 검출기를 사용하는데, 소프트 일렉트로닉스를 접목해 무선으로 작동하면서 몸에 잘 부착되게 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웨어러블 소자를 이용해서 얻은 데이터가 환자 진료에 의미가 있다는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도 받았고, 봉사단체와 함께 중·저소득 국가에 보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존 로저스 교수가 개발한 소프트 일렉트로닉스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신생아의 활력 징후를 무선으로 모니터링하는 장치에도 활용된다./미 노스웨스턴대

소프트 일렉트로닉스 분야에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로저스 교수는 “소자 자체는 유연한데 소자 안의 구성품이 단단한 물질이다 보니 유연성을 유지하면서 서로 분리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며 “다른 분야의 공정을 응용하는 전략으로 공정적 어려움은 어느 정도 해결이 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상용화에 시간이 걸린 것은 시장에 대한 인식 문제도 있었다고 했다. 로저스 교수는 “시장에 제품을 내놓았을 때 소비자들이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관건”이라며 “2013년 실시간으로 건강 정보를 파악하는 제품을 출시했으나, 당시 소비자들은 손목에 차는 웨어러블 디바이스 핏빗도 잘 모르던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가 생소한 소자를 수용할 준비가 돼지 않았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행히 최근에는 상황이 나아졌다. 로저스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소비자들이 원격으로 환자의 상태를 추적할 수 있다는 데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며 “여기에 기기로 얻은 수많은 데이터를 AI의 머신 러닝으로 분석, 해석할 수 있어 효용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로저스 교수는 해당 기술을 의학 분야뿐 아니라 스포츠 과학이나 재활 치료까지 적용할 예정이다. 그는 “새로운 기술이 나온 뒤에 제품이 나오기까지는 평균 10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공정적인 문제가 많이 해결된 만큼 낙관적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