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프린스턴 대학교의 존 홉필드 교수(왼쪽)와 토론토 대학교의 제프리 힌턴 교수.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오늘날 인공지능(AI)의 시대를 연 인공 신경망 연구로 기계 학습(머신 러닝)과 심층 학습(딥 러닝)의 토대를 놓은 이들에게 수여됐다. ‘AI의 겨울’로 불리는 1970~2000년 암흑기에서 벗어나고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로 꽃을 피우는 데 기여한 공로로 AI 연구자에게 사상 첫 노벨상이 주어졌다는 평가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8일(현지 시각) 존 홉필드(91)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와 제프리 힌턴(77)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를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AI의 대부’로 불리는 힌턴 교수와 홉필드 교수의 이번 수상은 물리학계에서도 예상 밖이라는 반응이다. 노벨위원회는 “신소재 개발을 비롯해 물리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인공 신경망이 분석 도구로 활용되고 있고, 과학 전반과 일상생활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며 “이들의 연구로 인류는 다양한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했다.

홉필드 교수는 AI 학습의 기본이 되는 연관 기억의 원리를 1982년에 인공 신경망 연구에 처음으로 적용했다. 예컨대 사람의 경우 특정 단어(사장)가 갑자기 떠오르지 않고 뒤 글자(장)만 생각날 때 ‘가장’ ‘도장’ 등을 연상하며 기억하려 애쓰는 것처럼, 컴퓨터에서 데이터(패턴)가 불완전할 경우 기존에 저장된 패턴 중에서 가장 유사한 것으로 찾아가는 방식을 제시한 것이다.

그래픽=양인성

‘AI 4대 천왕’으로 꼽히는 힌턴 교수는 심층 학습의 개념을 확립했다. 예컨대 AI가 수천만 장의 사진을 통해 개와 고양이를 구별하는 학습을 할 때 인간 뇌의 정보 처리 방식처럼 단계를 세분화해 깊이를 더하는 심층 신경망을 고도화한 것이다.

홉필드, 힌턴 교수의 연구는 오늘날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의 기반이 됐다. 예를 들면 2016년 이세돌 9단을 이긴 바둑 AI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는 힌턴의 제자들이 세운 회사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홉필드 교수는 물리학과 생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구자이고, 힌턴 교수는 컴퓨터 과학자이다. 정통 물리학자로 꼽히지 않는 이들이 물리학계 최고의 영예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에 대해 의외라는 반응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연구에는 물리학의 원리가 담겨 있고, 이들의 연구 성과는 물리학 전반에 혁신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컨대 홉필드 교수가 1982년에 내놓은 홉필드 네트워크는 분자 물리학의 원리에서 영감을 받아 컴퓨터도 정보를 기억하고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증명한 모델이다. 이를 통계 물리학을 활용해 고도화한 인물이 힌턴 교수다.

결국 이들이 뉴런(신경세포)과 뉴런 간 연결부인 시냅스를 통해 신호를 보내는 인간 뇌의 신경망을 모방한 인공 신경망을 확립하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AI 학습의 핵심인 머신 러닝(기계 학습)과 딥 러닝(심층 학습)의 토대를 놓은 것이다.

홉필드, 힌턴 교수는 초기 연구 단계에서 회의적인 반응을 얻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AI 연구에 대한 관심이 드물었던 1980년대부터 AI 연구에 뛰어든 힌턴은 두 번의 ‘AI 겨울’을 극복한 것으로 유명하다. ‘AI 겨울’은 AI에 대한 자금과 관심이 급감한 불황기를 의미한다. 1980년대 초반과 1990년대 초반 두 번의 겨울이 찾아왔다. 이때 특히 힌턴 교수가 연구하던 인공 신경망은 상용화 가능성이 낮아 학계의 외면을 받았다.

힌턴 교수는 이날 노벨상위원회와의 인터뷰에서 “인류는 지금까지 우리 자신보다 더 똑똑한 기술을 가진 적이 없었다”며 “앞으로 AI가 효율성과 생산성을 더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고,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했다.

2013년 구글로 옮겨 부사장까지 오른 힌턴 교수는 지난해 4월 구글을 떠나 AI의 위험성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그는 구글을 떠난 이유가 AI의 위험성 때문이라며 AI 기술의 위험성을 지속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통적인 물리학 연구가 주로 수상한 노벨 물리학상이 AI 연구에 주어진 것에 대해 학계에서는 파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번 결정은 AI가 물리학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 AI는 입자 물리학과 물리 관련 통계 등에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조정효 서울대 교수는 “두 수상자의 연구 성과는 과거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AI로 나아가는 데 기초가 됐다”며 “AI 관련 연구자가 처음으로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데는 최근 AI의 막대한 영향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머신 러닝·딥 러닝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

사람이 학습하듯 컴퓨터에도 데이터를 주고 학습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지식을 얻어내는 알고리즘. 텍스트나 숫자 등 구조화된 데이터를 통해 인간이 묻는 질문에 답을 하거나 주식시장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등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딥 러닝(Deep Learning)

인공지능 컴퓨터를 학습시키는 방법 중 하나로 컴퓨터가 사람처럼 생각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한 기술이다. 사진·동영상·소리 등 비정형 데이터로도 학습할 수 있으며, 이미지·음성 인식, 자율 주행, 번역 등에 활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