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경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조선비즈

한국 시각으로 9일 오후 6시 45분,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 위원회가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를 발표하자 백민경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의 휴대전화가 바쁘게 울렸다. 백 교수는 이날 노벨 화학상을 받은 데이비드 베이커(David Baker·62) 미국 워싱턴대 교수의 제자다. 노벨 위원회가 베이커 교수의 대표적인 수상 업적으로 꼽은 로제타폴드(RoseTTAFold) 개발에도 참여했다.

어렵게 전화가 연결된 백 교수는 베이커 교수에 대해 “그 정도 대가라면 외부 활동을 많이 할 법 한데 지금도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실에서 보낼 정도로 연구를 사랑하는 과학자”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도 친근한 삼촌처럼 대해준 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1990년생인 백 교수는 1962년생인 베이커 교수와 30년 가까이 차이가 난다.

백 교수는 2019년 5월에 베이커 교수의 연구실에 박사후연구원(포스닥)으로 합류해서 2022년 7월까지 일했다. 베이커 교수는 워싱턴대 생화학과 교수이면서 단백질 설계연구소(IPD)의 소장도 맡고 있다. 연구소까지 합하면 베이커 교수의 밑에만 200명에 이르는 과학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백 교수는 “AI를 활용한 단백질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베이커 교수가 단백질 설계 분야에서 워낙 대가였기 때문에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18년 그와 인터뷰를 했고 2019년에 연구실에 합류하게 됐다”고 말했다.

백 교수가 베이커 교수의 연구실에 합류한 시기는 단백질 구조 예측 AI가 등장한 시기와 겹친다. 이날 베이커 교수와 함께 노벨상을 받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CEO와 존 점퍼 수석연구원이 2018년 단백질 구조 예측 AI ‘알파폴드’를 발표했고 베이커 교수가 2021년 새로운 구조의 단백질을 설계하는 AI ‘로제타폴드’를 내놨다.

백 교수는 당시를 회상하며 “로제타폴드는 2020년 말부터 시작해서 2021년 6월에 사전 공개 논문이 나왔고 정식 논문이 그 해 8월에 나왔다”며 “베이커 교수는 단백질 구조 예측에 대한 업적보다는 단백질 설계에 대한 업적으로 상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베이커 교수는 단백질 설계 쪽에서도 드노보 단백질 디자인이라고 부르는 분야에 집중했다”며 “기존에 알려진 단백질을 개량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설계해서 원하는 기능을 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걸 개척한 것”이라고 말했다. 백 교수는 “기존의 계산 화학을 통해 하던 걸 AI로 대체한 것인데, 큰 틀은 비슷하지만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베이커 교수는 이날 함께 노벨상을 받은 허사비스 CEO와 달리 지금도 학교에 있다. 백 교수는 이를 두고 베이커 교수의 철학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커 교수는 자신이 만든 AI 기술을 공개해서 모두가 무료로 쓸 수 있게 했고, 제자들이 사업을 할 때도 뒤에서 지지했다. 그에겐 파급력이 큰 기술이라면 모두가 쓸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철학이 있다. 백 교수는 “돈을 벌고 싶다면 본인이 회사를 차려서 CEO가 되거나 핵심 기술을 공개하지 않으면 될 텐데 그러지 않았다”며 “당장 이익을 쫓기보다는 파급력을 통해서 그 분야가 발전해야 시장도 더 커질 수 있고,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을 하는 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