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기대 수명 증가가 한계에 부딪혀 ‘100세 시대’가 어려울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0세기 초에는 평균적으로 매년 0.3년씩 급격히 성장한 선진국의 기대 수명의 증가 폭이 둔화돼, 최근 출생자의 100세 생존 비율이 5%대를 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러스트=이철원

미국 일리노이대의 제이 올샨스키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7일(현지 시각) 국제학술지 ‘네이처 노화’에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극적인 변화가 있지 않고서는 인간 수명의 증가 속도가 급격히 둔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구팀은 기대 수명의 성장세가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미국, 한국, 일본, 프랑스 등 10국의 1990~2019년 기대 수명 데이터를 조사했다. 분석 결과 1990년 이후 모든 국가에서 기대 수명 증가 폭이 둔화됐으며, 특히 2010년 이후에 그 추세가 더 심해진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르면 2019년에 태어난 사람 중에서 100세까지 살 것으로 예측되는 비율은 여성 5.1%, 남성 1.8%에 불과한 것으로 예측됐다. 올샨스키 교수는 “현대 의학의 급격한 발전에도 기대 수명 증가 폭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기대 수명이 점점 더 길어질 것이라는 기존의 예상을 뒤엎는 결과”라고 했다.

인류의 기대 수명은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50세를 넘지 못했다. 당시에는 100년 동안 평균 1년 늘어나는 수준에 그쳤던 기대 수명은 20세기 공중 보건과 의학의 폭발적인 발전과 함께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20세기 들어 기대 수명이 10년마다 3년씩 늘어난 것이다. 특히 2000년 들어 일본의 기대 수명이 80세를 넘어서고 호주와 프랑스 등 국가들도 80세에 육박하면서 기대 수명이 100세에 이를 날이 멀지 않았다는 기대가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올샨스키 교수팀의 이번 연구 결과는 기존의 예측을 뒤엎는 내용이다.

그래픽=양인성

◇”’100세 인구’ 남성 5% 넘지 않을 것”

올샨스키 교수 연구팀은 미국과 한국 등 10국의 1990년부터 2019년까지의 연령별, 성별 사망률 등 데이터를 분석했다. 이들 국가에서 29년간 기대 수명은 평균 6.5년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20세기 초 10년에 평균 3년씩 기대 수명이 늘어났던 것에 비하면 30%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분석 대상 국가 중에서 비교적 기대 수명 증가 폭이 컸던 한국과 홍콩도 최근 10년간의 기대 수명 증가 폭은 2000년 이전보다 낮았다.

100세까지 살 것으로 예상되는 인구의 수도 많지 않았다. 2019년에 태어난 사람을 기준으로 분석 대상 국가의 인구가 100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여성은 5.1%, 남성은 1.8%에 그쳤다. 국가별로는 여성 12.8%, 남성 4.4%가 100세까지 살 것으로 예측된 홍콩이 그나마 100세 시대를 향해 가는 것으로 나타났고, 미국은 여성 3.1%에 남성 1.3%로 낮았다. 한국도 여성 4.7% 남성 1.5%에 그쳤다. 2119년이 되어도 ‘100세 시대’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정도로 100세 인구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연구팀은 앞으로도 인류의 100세까지 생존율은 남성 5%, 여성 15%를 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생물학적 노화 늦출 신기술 나올까

미국의 기대 수명 증가세 둔화가 두드러진 요인으로 연구팀은 약물 과다 복용, 총기 사건, 의료 서비스의 불평등을 꼽았다. 한국과 홍콩이 미국보다 기대 수명 증가 폭이 큰 이유로는 경제 성장과 담배 규제 등을 들었다.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가 이번 세기 안에 급격한 수명 연장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했다. 올샨스키 교수는 영국 가디언에 “지금 인류가 하고 있는 ‘장수 게임’은 영유아와 어린이, 가임기 여성을 더 많이 살림으로써 기대 수명을 크게 늘렸던 과거와는 다르다”며 “60~80세 인구를 더 오래 살게 하려는 ‘노화와의 전쟁’은 이제 기대 수명 증가에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결국 생물학적 노화를 늦출 신약이나 신기술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기대 수명이 예전처럼 큰 폭으로 늘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노화를 늦추거나 생체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는 이어지고 있다. 미국 하버드 의대의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는 염색체에서 노화를 유발하는 텔로미어(말단 소체)의 길이를 길게 유지할 수 있다면 노화 방지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일본 교토대 야마나키 신야 교수는 쥐의 피부 세포에 유전자 조절 단백질을 삽입해 노화 세포를 정상 세포로 전환하는 연구로 2012년 노벨상을 받았다.

이번에 올샨스키 교수 연구팀은 각국 정부의 보험 정책 변화와 은퇴 계획 수정 등 광범위한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예전처럼 큰 폭의 기대 수명 증가에 초점을 둔 정책들은 재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영수 한양대 교수는 “기대 수명이 어느 정도 정점에 이르렀다면 사회 전체적인 구조 개혁의 신호로 해석해야 한다”고 했다.

☞기대 수명

특정 연령대의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몇 세까지 살 수 있을지 예측한 값. 인구의 연령별 사망률을 바탕으로 각 연령대의 생존 확률을 계산하는 것으로, 자연스러운 죽음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사고나 자살 등의 경우는 포함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