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중독이 한국 사회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젊은 층에서 중독자 비율이 빠르게 늘고 있다. 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6년간 전체 마약중독자 중 10대부터 30대까지 비율은 35.9%에서 45.7%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20대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30대와 10대가 뒤를 이었다.

전문가들은 신속한 초기 진단이 마약 중독을 예방하는 데 필수라고 강조한다. 일시적인 호기심이나 일탈이 중독으로 이어지기 전에 미리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우영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공지능(AI)이 대규모 데이터를 학습해 스스로 답을 찾는 머신 러닝(기계학습)과 같은 방법을 활용해 질문과 답변으로 중독과 관련된 특성을 몇 분에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기존 중독자의 특성을 측정하는 검사가 몇 시간씩 걸리는 것과 비교하면 획기적 발전이다.

지난 19일 서울대에서 만난 안우영 심리학과 교수는 "현재 약물 중독과 관련된 인지신경학적 특성을 밝히는 검사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신뢰도는 낮다"고 말했다./홍아름 기자

지난달 19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만난 안 교수는 “현재 약물 중독과 관련된 인지신경학적 특성을 밝히는 검사는 겉으로 보이는 행동이나 증상을 기준으로 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신뢰도는 낮다”며 “현실적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에 적용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흔히 마약 중독 검사라고 하면 머리카락이나 체액 분석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약물을 사용했는지 평가하는 데 사용되고, 중독 환자들의 특성을 알아내기에는 한계가 많다.

안 교수가 사용하는 도구는 몇 년 전부터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한 ‘밸런스 게임’과 비슷하다. 밸런스 게임은 ‘짬뽕 아니면 짜짱’처럼 선택지 두 개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임이다. 안 교수도 선택지 두 개 중 하나를 선택하는 질문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중독에 취약한 ‘충동성’을 가진 사람을 찾아냈다.

안 교수는 기자에게 지금 100만원 받기와 1년 뒤 1000만원 받기 중 어떤 것을 고르겠냐고 물었다. 현실적으로 100만원이 1년 뒤에 10배 이익을 얻을 방법은 거의 없기에 1년 뒤 1000만원 받기를 골랐다. 그러자 곧바로 지금 800만원 받기와 1년 뒤 1000만원 받기 중에서는 어떤 것을 고르겠냐고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지금 800만원을 선택했다.

안 교수는 “사실 1년 안에 200만원의 차익을 얻을 방법도 거의 없어 대부분 주관적으로 800만원을 더 선호한다”며 “반면 중독자는 이런 문제에 답하는 과정에서 단기적인 이익을 선택하는 충동성과 같은 중독 특성이 강하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독 특성을 보인 환자는 지금 100만원과 1년 뒤 1000만원 중 하나를 고르라는 질문에 지금 100만원을 고르는 경우가 있다고 안 교수는 말했다.

안 교수 연구진은 약물 중독 환자들의 인지신경학적 특성을 더 신속하고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ADO(Adaptive Design Optimization, 적응적 실험 최적화)’ 기법을 도입했다. AI가 머신 러닝 기법으로 환자에게 어떤 질문을 해야 최대한의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는지 도출하는 방법이다. 이전까지 ADO를 임상에 적용한 사례가 거의 없었지만, 안 교수는 학부 때 공학을 전공하며 통계와 수학적 모델링에 익숙해 과감하게 시도했다.

안 교수는 “ADO를 접목해 10개의 질문만으로도 0부터 1까지 매겨지는 검사 신뢰도를 0.95까지 높일 수 있었다”며 “각 질문에 답하는 데 약 2~3초 정도 걸리기 때문에 전체 검사 시간은 최대 1~2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안우영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지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미 국립보건원(NIH) 산하의 국립약물남용연구소(NIDA)로부터 연구비 35억원에 달하는 연구과제를 수주했다"고 밝혔다./홍아름 기자

안 교수는 선행 연구와 새로운 발상으로 미 국립보건원(NIH) 산하의 국립약물남용연구소(NIDA)로부터 연구비 35억원에 달하는 R01 연구과제를 공동 주 연구자로 수주했다. R01 과제는 NIH에서 개인 연구자에게 지급하는 연구비 지원 프로그램 중 가장 규모가 크다.

그만큼 연구자의 우수성을 인정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마약 중독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국이 한국보다 먼저 안 교수 방식의 효용성을 인정한 셈이다. 안 교수는 “개발한 검사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처럼 신속하고 정확하게 만들고, 나아가 마약 종류에 따른 특성까지 구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 도구는 중독 환자의 특성을 실시간으로 측정해 맞춤형 치료법을 찾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안 교수는 “인지행동치료의 성공률이 50%에 그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환자의 개별적인 특성이나 상태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개개인에게 맞춘 치료법을 사용할 수 있다면 중독 치료의 성공률도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이번에 확보한 연구비를 활용해 2028년까지 한국과 미국, 유럽에서 다양한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해 검사 방식을 검증하고, 치료 효과도 예측할 수 있는지 알아볼 계획이다. 안 교수는 “미국에서는 마리화나와 코카인, 헤로인과 같은 다양한 마약을 혼합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이나 유럽의 불가리아와 같은 국가들은 단일 마약 사용자 집단이 더 많다”며 “한국과 같은 나라들은 단일 마약의 영향을 관찰하기 쉬워 각 약물의 고유한 효과를 연구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은 중독 연구에 대한 정책적 관심과 지원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안 교수는 “한국 사회가 중독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중독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로, 마약 중독 병원과 같은 인프라를 확충하고 연구 인력을 늘리기 위한 조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Scientific Reports(2020), DOI: https://doi.org/10.1038/s41598-020-68587-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