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궁금한 게 생기면 책이나 어른이 아니라 컴퓨터에서 챗GPT과 같은 인공지능(AI)과 대화해서 답을 찾는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인공신경망을 개발해 AI 시대의 주춧돌을 놓은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노벨 위원회는 인간의 뇌에서 영감을 얻은 인공신경망은 과학 연구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활용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 위원회는 8일(현지 시각)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존 홉필드(John Hopfield·91)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와 제프리 힌튼(Geoffrey Hinton·77)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 위원회는 8일(현지 시각)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존 홉필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와 제프리 힌튼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AFP 연합뉴스

◇뇌가 시각 정보 처리하듯 작동

존 홉필드 교수와 제프리 힌튼 교수는 챗GPT나 한국에서 이세돌 9단을 꺾은 알파고 같은 첨단 AI 기술의 오늘이 있게 한 이들이다. 힌튼 교수는 흔하게 사용되는 ‘딥 러닝(deep learning, 심층학습)’이라는 개념을 처음 고안한 인물이다. 딥 러닝은 수십 개 층으로 이뤄진 인간의 신경망을 모방한 심층신경망(DNN·Deep Neural Network)에 기반을 둔다.

눈으로 들어온 시각정보는 신경세포가 뇌로 전달하는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신경세포가 복잡하게 얽혀 신호를 주고 받는다. 여러 층에 걸쳐 있는 회사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1층에 있는 말단 직원이 단순한 정보만 추려서 2층의 대리에서 발송하면, 2층의 대리는 다시 그 중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만 추려서 3층의 과장에게 보낸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꼭대기 층의 사장은 압축되고 정교한 정보를 받게 된다.

힌튼 교수 이전에는 인공신경망이 3층 정도에 불과했다. 그 이상으로 가면 효율이 떨어지는 탓에 활용도가 낮았다. 하지만 힌튼 교수가 2006년 딥 러닝의 완성본인 심층신경망을 개발하면서 달라졌다. 힌튼 교수의 심층신경망은 10층 이상으로 만들어졌고, 각 층마다 데이터를 따로 공부하도록 해서 오류를 줄였다.

힌튼 교수가 제시한 딥 러닝은 이후 등장하는 AI 기술의 모체가 됐다. 세계 인터넷 기업인 구글은 힌튼 교수가 세운 머신러닝 기업인 DNN리서치를 인수해서 AI 연구를 본격적으로 진행했고, 2016년 알파고로 세상에 충격을 준 딥마인드도 힌튼 교수의 제자들이 만든 기업이다. 챗GPT를 만든 오픈AI의 초대 연구소장을 지낸 일리야 수츠케버도 DNN리서치의 공동 창업자다.

뇌의 신경망은 살아있는 세포인 뉴런으로 구성돼 있다. 첨단 내부 기계를 갖추고 있다. 신경세포 연결부인 시냅스를 통해 서로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배울 때 일부 뉴런 간의 연결은 더 강해지는 반면 다른 뉴런은 약해진다. 인공 신경망은 다음과 같은 노드로 구축된다. 노드는 서로 연결돼 있으며, 네트워크가 학습되면 동시에 활성화된 노드 간의 연결이 더 강해지며, 그렇지 않으면 약해진다./스웨덴 왕립과학원

◇인간 뇌를 모방한 인공신경망

앞서 홉필드 교수는 1980년대에 딥 러닝의 기본 원리인 신경망의 개념을 정리한 인물이다. 홉필드 교수는 1982년 ‘홉필드 네트워크’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홉필드 네트워크는 그 전까지 존재하던 모델과 달리 모든 뉴런(신경세포)이 양방향으로 연결된 신경회로망의 동작 모델을 말한다. 홉필드 교수는 당시 칼텍에서 화학 및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이후 생물학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사람의 뇌를 닮은 신경망 연구에 빠져들었다.

뇌의 신경망은 살아있는 세포인 뉴런으로 구성돼 있다. 신경세포 연결부인 시냅스를 통해 서로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배울 때 일부 뉴런 간의 연결은 더 강해지는 반면 다른 뉴런은 약해진다. 이전에는 정보가 일방향으로 갔지만, 홉필드 교수의 네트워크는 처음으로 양방향으로 정보가 전달되는 모형을 제시했다. 인공 신경망의 노드(node, 점)도 뉴런처럼 서로 연결돼 있다. 네트워크가 학습되면 동시에 활성화된 노드 간의 연결이 더 강해지며, 그렇지 않은 쪽은 약해진다.

장병탁 서울대 AI연구원장은 “홉필드 네트워크는 생성형 AI의 기반이 되는 개념”이라며 “홉필드 교수가 1980년대 초에 신경망의 기초 이론을 정립했고, 힌튼 교수는 지금의 AI 기반을 마련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홉필드 교수의 제자였던 테렌스 세즈노스키와 힌튼 교수가 홉필드 네트워크를 개선한 ‘볼츠만 머신’을 제안하는데, 이 볼츠만 머신이 지금의 다층 신경망으로 발전했다. 힌튼 교수는 연구를 이어나가 딥 러닝 개념을 제안하고, 지금의 AI가 가능해졌다. 조정효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는 “홉필드 네트워크와 볼츠만 머신은 모형적으로는 같은데, 10개의 뉴런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 중에 몇 번째 뉴런이 활성화됐는지를 기억하는 식으로 네트워크가 학습할 수 있게 한 모형이라고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의 얼굴 인식 과정./조선DB

힌튼 교수는 이번에 노벨 위원회와의 인터뷰에서 “인류는 신경망과 머신러닝보다 더 똑똑한 기계를 가진 적이 없다”며 “앞으로 효율과 생산성을 더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고,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힌튼 교수는 AI 기술의 부정적인 활용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그는 “이 시스템이 인간보다 더 똑똑해질까봐 걱정이 된다”며 “나쁜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벨 위원회는 “힌튼 교수가 말한 걱정거리에 대해 (수상자 선정 과정에서) 많이 이야기가 오고 갔다”며 “우리는 되도록 많은 사람이 머신러닝의 매커니즘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벨 물리학상 올해 수상자에게는 상금 1100만 크로나(약 14억3400만원)가 지급된다. 노벨 위원회는 전날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이날 물리학상, 9일 화학상, 10일 문학상, 11일 평화상, 14일 경제학상 수상자를 차례로 발표한다. 노벨상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이 낀 ‘노벨 주간’에 스웨덴 스톡홀름(생리의학·물리·화학·문학·경제상)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