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한국 미용 의료기기 기업 휴젤의 행사에 현지 의료 전문가와 의료계 종사자 350명이 몰렸다. 흔히 ‘보톡스’로 불리는 보툴리눔 톡신 신제품 출시 행사에 인도네시아 피부과 의사들이 대거 참석한 것이다. 휴젤 관계자는 “동남아시아에서 태국과 함께 양대 성형 미용 시장으로 꼽히는 태국에서 한국산 보툴리눔 톡신이 각광받고 있다”며 “앞으로도 학술 세미나와 워크숍을 통해 동남아 현지 의료 전문가들과 지속적인 소통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한국산 보톡스를 뜻하는 이른바 ‘K보툴리눔 톡신’이 미국과 동남아 등 세계 주요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K팝으로 한국산 선호가 커진 데다 중장년층 중심이었던 보툴리눔 톡신(이하 톡신) 수요가 젊은 세대로 확산하면서 해외 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그래픽=양인성

◇최대 시장 미국 진출해 실적 견인

올해 상반기 국내 기업 중 가장 큰 톡신 매출을 낸 곳은 대웅제약이다. 대웅제약은 올해 상반기에만 902억원의 매출을 올려 지난해 전체 매출(1408억원)의 60% 이상을 달성했다. 매출 확대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수출국은 미국으로, 전체 해외 매출의 80%가량을 차지한다. 대웅제약은 자사 톡신 제품 ‘나보타’를 미국 파트너사인 에볼루스와 협업해 ‘주보’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판매하고 있다. 이 제품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2021년 7%에서 2022년 9%, 2023년 11%로 올랐고 올해에는 상반기에 이미 12%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해외 시장 성과에 힘입어 대웅제약은 올해 2분기 매출 3255억원, 영업이익 496억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 ‘보툴렉스(미국명 레티보)’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획득한 휴젤도 매출이 확대됐다. 휴젤의 올해 상반기 톡신 매출은 853억원으로 아시아와 유럽, 캐나다와 남아메리카 매출이 고르게 증가했다. 휴젤의 해외 매출은 올해 하반기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FDA 승인을 받은 휴젤의 톡신이 이르면 다음 달 미국에 출시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국산 톡신이 해외 시장에서 인기를 얻는 요인으로 가격 경쟁력을 꼽는다. 지난 20년간 글로벌 톡신 시장은 최초의 보툴리눔 톡신을 내놓은 에브비가 장악해 왔다. 에브비의 제품명 ‘보톡스’가 보툴리눔 톡신을 통칭하는 말로 쓰일 정도다. 하지만 에브비가 최근 3년간 가격을 인상하면서 수요자들이 이탈하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이 각국 정부의 승인을 획득하며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다.

◇국내 톡신 원조 메디톡스는 유럽 매출 확대

국내에서 보툴리눔 톡신을 최초로 개발한 기업으로 꼽히는 메디톡스도 수년간 이어진 소송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면서 실적이 개선될 전망이다. 지난 22일 대전고등법원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메디톡신 허가취소처분 등에 관한 식약처의 항소를 기각했다. 앞서 2020년 식약처는 메디톡스가 보툴리눔 톡신 제품 ‘메디톡신’ 생산 과정에서 무허가 원액을 사용했다며 품목허가 취소 처분을 내렸고, 이에 소송을 낸 메디톡스는 지난해 11월 1심 승소 판결을 받았다.

메디톡스가 지난달 공시한 2분기 매출은 650억원, 영업이익은 143억원으로 1분기 만에 흑자 전환했다. 이에 따라 향후 메디톡스의 실적도 상승세를 탈 것으로 예상된다.

메디톡스는 아직 미국 시장으로 진출하진 않았지만 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외 매출이 꾸준히 늘고 있다. 2분기 해외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8% 증가한 388억원을 기록했다. 이 기간 유럽 매출이 167% 늘며 크게 증가했고, 아시아와 캐나다·남아메리카에서 각각 26%, 19% 늘었다. 지난 2월 FDA 승인에 실패한 신제품 톡신 ‘MT10109L’에 대해서는 재심사에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정희령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톡신 업체들은 그간 수출 물량을 제대로 대지 못했지만, 내년부터는 신공장 가동 및 신규 제품 허가 승인으로 수출 가능 물량이 평균 3.4배 증가할 전망”이라며 “국내 톡신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으로 글로벌 수요를 견인하고 있는 만큼 2025년 평균 수출 실적도 전년 대비 33.8% 성장할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