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사용하던 중 폭발한 삐삐의 잔해. 내부에서는 고성능 폭약인 PETN이 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PETN은 5g만으로도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으며 80g 사용하면 항공기 테러까지 일으킬 수 있다./AFP 연합뉴스

레바논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슬람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사용하는 삐삐(무선호출기)와 무전기가 지난 17일부터 18일까지 연이어 폭발해 4000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의 삐삐 사용 계획을 알고 내부에 폭약인 ‘펜타에리트리톨 테트라니트레이트(PETN)’를 심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20일 국내 전문가들은 PETN은 소량으로도 인명을 살상할 수 있고 폭발을 일으키는 방법도 간단해 테러에 많이 쓰인다고 분석했다.

PETN은 다이너마이트에 들어있는 트라이나이트로톨루엔(TNT)과 함께 대표적인 폭약으로 꼽힌다. PETN의 가장 큰 장점은 소량으로도 강한 폭발을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손홍래 조선대 화학과 교수 “일반적으로 PETN은 TNT에 비해 10배 강한 폭발력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폭발도 쉽게 일어나 실험용으로 만들 때도 TNT보다 PETN을 더 조심히 제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PETN의 파괴력은 매우 크다. 사람을 다치게 하는 데 5g이면 충분하고, 20g이면 여러 사람을 동시에 사살하는 것도 가능하다. 80g 정도만 있어도 항공기를 폭파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 공업용 폭약으로 사용하는 TNT와 비교해서도 뒤쳐지지 않는 위력이다. PETN 1g으로 낼 수 있는 위력은 TNT 1.2g과 비슷하다.

여기에 폭발을 일으키는 점화 방법도 간단해 주로 군용과 산업용으로 사용된다. 여재익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PETN은 큰 에너지 없이도 손쉽게 점화가 가능하다”며 “이 같은 특성 덕분에 소규모의 폭탄 제조에 주로 활용된다”고 말했다.

PETN 점화는 주로 전기 스파크로 한다. 가스레인지 스위치를 돌릴 때 불꽃이 튀는 것이 바로 전기 스파크이다. 전기 스파크를 이용하면 점화 장치를 작게 만들 수 있지만, 에너지가 적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PETN을 점화하는 데는 충분하다.

PETN을 점화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최소 10mJ(밀리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겨울철 발생하는 정전기의 에너지가 최대 20mJ에 달하는 것을 고려하면 작은 스파크 장치만으로도 쉽게 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미다.

여 교수는 “고체에서 액체로 갔다가 기체로 가는 TNT와 달리 PETN은 고체에서 기체로 바로 가기 때문에 자극만 준다면 쉽게 폭발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손홍래 조선대 교수는 “PETN은 점화가 간단해 군용 폭탄의 기폭제로 사용한다”며 “위력도 TNT보다 강하지만 가격이 비싸 주로 소량을 사용하는 기폭제 용도로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렇게 강한 폭약을 탐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 사례처럼 밀폐된 장치 내부에서 사용하면 지금의 기술로는 탐지가 불가능하다. 보통 폭발물 탐지는 폭발물 외부에 묻은 분자를 채취하거나 증기압을 측정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PETN의 증기압은 다른 폭약에 비해 낮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는 탐지가 어렵다. 증기압은 고체 물질이 기체로 변해 만든 압력을 의미한다.

손 교수는 “PETN은 TNT에 비해 증기압이 1000분의 1 수준으로 낮다”며 “TNT 증기를 탐지할 수 있는 장비도 세계적으로 극소수에 불과하고, PETN 증기를 탐지할 수 있는 장비는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PETN은 이 같은 특성 때문에 과거부터 테러와 사보타주(파괴공작)에 널리 사용돼 왔다. 대표적인 사례는 2019년 테러조직 알카에다 조직원이 기획한 노스웨스트 253편 테러 미수 사건이다. 당시 범인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미국 디트로이트로 향하는 항공편에 탑승해 PETN을 폭발시키려고 계획했으나 점화에 실패해 무위로 돌아간 바 있다. 이외에도 2001년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항공기를 테러하려던 ‘아메리칸 항공 63편’ 사건에도 PETN이 쓰였으나 미수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