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디엘지의 조원희(왼쪽) 대표 변호사와 양재석 파트너 변호사./법무법인 디엘지

“연구자 제재처분을 하다보면 안타까운 사례가 적지 않다. 옛날부터 하던대로 했을 뿐인데 바뀐 법이나 제도를 알지 못한 탓에 제재처분을 받고 징계를 당하는 일이 많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연구자에 대한 제재처분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한 말이다. 그의 말대로 많은 연구자가 연구를 잘 하는 법만 알지, 연구 행정이나 제도, 규정의 변화에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연구자를 도와줄 연구행정 전문가는 턱없이 부족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국내 연구자 1인당 연구지원 행정인력은 0.22명이다. 일본이나 독일, 프랑스, 영국과 비교하면 지원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연구자가 알아서 모든 걸 하다 보니 법이나 규정의 변화를 발 빠르게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법무법인 디엘지는 지난달 26일 국가 연구개발(R&D) 사업 수행에 필요한 법률 지식을 한데 모은 ‘대학·연구소 R&D 법률 가이드라인’을 출간했다. 무료로 공개된 이 가이드라인에는 2021년 시행된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을 중심으로 국가 R&D 사업과 관련된 법률 지식과 실무적인 행정처리 방법을 담고 있다. 변호사들이 왜 연구자들을 위한 ‘재능 기부’에 나선 걸까.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디엘지 본사에서 만난 조원희 대표 변호사와 양재석 파트너 변호사는 “여러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대학 등을 자문하면서 국가 R&D 사업의 법적 쟁점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왔다”며 “이번 가이드라인 책이 연구 현장의 실무자들이 복잡한 법률 이슈를 이해하고 처리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변호사는 과학기술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다. 여러 출연연과 대학 등 R&D 현장에서 법률 자문을 한 지가 10년째다. 이들은 10년 동안 경험한 R&D 현장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연구자와 연구행정 인력들이 ‘법을 몰라서’ 제재처분을 받거나 징계를 당하는 문제를 막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양 변호사는 “갑자기 연구행정을 담당하게 된 경우 이 책 한 권만 쭉 보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가이드라인은 국가연구개발사업과 관련된 법률부터 성과의 귀속과 이전, 창업, 국가계약법, 이해충돌방지법과 청탁금지법과 관련된 주요 이슈를 총 네 부분으로 나눠 정리했다. 양 변호사는 “각 분야를 정리한 간행물들이 있지만, 연구소나 출연연을 타깃으로 하진 않는다”며 “한국과학기술지주의 도움을 받아 과학기술계에서 문제로 다뤄졌던 이슈들을 발굴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가이드라인은 연구 현장의 다양한 사례와 상황을 담아 법이나 행정 업무에 미숙한 연구자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 대표 변호사는 “연구자들이 법률적 지식이 부족해 자주 겪었던 문제를 타임라인별로 정리할 수 있다”며 “한동안은 연구비 유용 관련 이슈들이 많았고, 기술이전 계약할 때 실시료를 잘못 산정하거나 외부 기관과 계약할 때 세부 사항을 놓쳐 징계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연구 현장에서 눈에 띄게 창업 관련 법적 분쟁이 늘었다. 연구자가 소속 기관 외부에서 창업을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지적재산권의 소유, 주식 취득 등을 놓고 분쟁이 벌어졌다. 출연연 연구자가 연구소 기업을 창업하면서 연구자와 기업 대표라는 두 개의 직위를 가졌을 때 생기는 문제도 있다. 연구기관 소속 연구자로 진행하던 과제에 기업 대표로 다시 참여하는 게 이해충돌인지 아닌지를 놓고 논란도 있다.

양 변호사는 “이런 사례들에서는 관련 법률들이 서로 충돌하는데, 사례가 한 건 한 건 나올 때마다 정리를 할 수밖에 없다”며 “과기정통부에 법률 제안을 해서 관련 법을 제·개정하면서 이슈에 맞춰 정리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자가 아무리 법을 열심히 공부해도 전문 인력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 두 변호사는 연구 행정 인력의 전문성을 키우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연구 행정 인력이 순환보직으로 여러 분야를 거치다 보니 법이나 제도에 대해 세부적인 내용까지 파악하기 힘들다. 조 대표 변호사는 “R&D 관련 특허나 기술이전과 관련된 법률적 교육은 많이 있지만, 국가계약법, 청탁금지법, 이해충돌법과 관련된 교육은 전무하다”며 “연구 행정 인력을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