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강력한 태양 폭발로 발생한 지자기 폭풍이 캐나다 퀘벡 일대를 덮쳤다. 주 전역에 정전이 발생하면서 12시간 동안 600만명이 큰 불편을 겼었다. 지자기 폭풍은 태양에서 전기를 띤 입자가 대량으로 쏟아져 나와 지구 자기장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는 현상이다. 사람에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전기가 끊기고 통신에 장애가 발생하는 등 태풍 못지 않은 피해를 입힌다.

최근 태양이 활동기에 접어들었다. 미국 중부와 일본 북부에서도 고위도 지역에서나 볼 수 있던 오로라가 자주 목격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요즘처럼 태양 활동이 활발한 시기 언제든 퀘벡 같은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영국과 미국 과학자들이 미국 내에서 지자기 폭풍과 같은 극한의 우주 날씨에 취약한 도시들을 알아냈다.

영국지질조사국(BGS)은 지난달 15~19일 영국 요크셔의 헐대에서 열린 연례 국가천문회의에서 지자기 폭풍이 발생했을 때 미국 여러 도시 가운데 워싱턴DC와 밀워키의 전력망이 특히 취약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공개했다. 그동안 지자기 폭풍이 전력망과 통신망 같은 인프라에 미치는 영향이나 국가 규모의 취약성을 살피는 연구는 있었지만 도시별 취약성을 확인한 연구는 처음이다. 이번 연구는 미국항공우주국(NASA·나사)을 비롯해 워릭대 연구진도 함께 참여했다.

유럽우주국(ESA)의 태양 프로바-2(Proba-2) 위성이 2024년 3월 23일 오전 02시 31분(유럽중앙시각) 태양 표면에서 폭발한 태양 플레어를 포착한 장면. 이와 같은 코로나 질량 방출은 위성, 통신 및 지구 인프라를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ESA

◇네트워크 이론으로 취약 지점 밝혀

지구에도 다양한 날씨가 있듯 우주에도 날씨가 있다. 우주 날씨는 태양과 지구 사이에 나타나는 다양한 환경 변화를 뜻하는 말이다. 태양의 흑점 폭발, 코로나질량방출(CME), 지구 자기권 폭풍, 오로라가 대표적인 현상이다. 태양 활동이 활발해지면 우주 날씨는 험악해진다. 강풍이 불거나 폭우가 쏟아지면 난리가 나듯 우주에서 날씨가 변덕을 부리면 지구엔 비상이 걸린다.

지자기 폭풍이 발생하면 지구 안팎에는 강력한 지자기 유도 전류가 발생한다. 이런 예상 밖의 전류는 송전선, 변압기, 석유나 가스 파이프라인, 철도, 해저 케이블을 손상시키고 인공위성이나 우주 비행사를 위협하기도 한다. 퀘벡에서 일어난 대정전 사태도 지자기 폭풍 때 발생한 유도 전류가 변압기에 과부하를 일으키며 발생했다.

연구진은 이런 지자기 폭풍 때 정전이 발생할 수 있는 미국 내 도시를 찾아보기로 했다. 소셜네트워크나 통신망 분석에 활용되는 네트워크 분석법을 활용했다. 네트워크 분석은 노드(node·점)들이 에지(edge·선)로 연결된 망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으로 2017년 9월 강력한 지자기 폭풍이 일어나는 동안 미국 전력망에서 발생한 유도 전류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워싱턴DC와 밀워키가 지자기 폭풍이 일어날 때 유도 전류가 가장 많이 연결되는 ’슈퍼 노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로렌 오르 BGS 연구원은 “두 도시가 강렬한 지자기 폭풍 때 발생한 유도 전류에 높은 연결성을 보인다”며 “두 도시가 그만큼 우주 날씨의 영향을 받기 쉽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2017년 9월 발생한 강렬한 태양 폭풍에서 나타난 지자기 유도 전류(GIC) 네트워크. /영국지질조사국

◇우주 날씨 취약한 도시 진짜 있다

앞서 발표된 연구를 종합해 보면 극지방에 가까운 위도 60~70도의 고위도 지역, 전자기파 효과가 증폭되기 쉬운 해안은 지자기 폭풍에 취약한 지역으로 분류된다. 또 전기 의존도가 높은 금융센터나 통신 허브, 광범위한 전력망이 밀집한 지역도 취약 지역으로 나타났다.

낡고 긴 송전선은 안테나 역할을 해서 변압기와 각종 전력기기에 유도 전류가 발생하기 쉬운 여건을 제공한다. 또 내비게이션 같은 위성 기반 서비스를 많이 소비하는 지역, 지하철이나 지하 전기와 통신 시설이 밀집한 지역,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도 지자기 폭풍 효과가 증폭될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분류된다.

전문가들은 이 점에서 미국 뉴욕이나 일본 도쿄처럼 현대 인프라와 인구가 밀집한 도시들이나 러시아 모스크바와 노르웨이 오슬로, 스웨덴 스톡홀름처럼 고위도 지역에서 통신, 전기 인프라가 잘 갖춰진 도시들이 취약하다고 보고 있다. 이번에 연구진이 알아낸 워싱턴DC나 밀워키도 이런 조건을 만족한다.

물을 많이 머금거나 토양에 전기 전도도가 높은 성분이 많은 도시도 지자기 폭풍 동안 경험할 가능성이 더 높다. 실제 미국지질조사국 연구진은 2019년 미국 북동부 전역의 센서를 사용해서 정전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식별하는 지도를 공개하면서 지역의 지질학적인 환경이 유도 전류의 생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했다. 암석이 도체인 경우 전류는 지면을 통해 쉽게 흐르지만 저항성을 가질 경우 전류는 대신 전력선을 통해 흘러 전력망을 위협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연구에선 뉴욕, 보스턴을 비롯해 워싱턴 DC도 강한 자기장이 나타나는 토질로 이뤄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과학자들은 지역의 암석 구성이 100년에 한 번에 발생하는 수준의 슈퍼 폭풍 상황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과학자들은 또 지자기 폭풍 때 발생하는 오로라 전기 제트 현상의 패턴도 지자기 유도 전류 생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내기도 했다.

1989년 퀘벡 일대에서 발생한 대정전 당시 촬영된 위성 사진과 지자기 폭풍 정보(오른쪽 푸른 부분). 1989년 강력한 태양 폭발로 발생한 지자기 폭풍이 캐나다 퀘벡 일대를 덮치면서 주 전역에 정전이 발생했다./스페이스웨더아카이브

◇20년 만에 가장 강력한 지자기 폭풍

연구진은 이번 발표에서 두 도시가 지자기 폭풍에 왜 취약한지 명확한 이유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연구진은 “두 도시의 전력망이 지자기 폭풍상횡에서 특히 취약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동안 지자기 폭풍은 위도 50도 이상 고위도 지역에서 걱정할 문제였다. 오로라만 해도 북극권과 남극권에서 관찰됐다. 위도가 그보다 아래인 서울이나 캘리포니아 같은 지역은 그런 점에서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 속했다. 하지만 태양활동이 극대기에 접어들면서 지자기 폭풍의 영향권은 저위도 지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태양은 11년주기로 활동이 극대기를 맞다가 다시 위축되는 걸 반복한다.

연구진은 지난 5월 10일 발생한 강력한 지자기 폭풍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과학적 대책을 마련하는 자리에서 이번 연구를 공개됐다. G5급이던 이번 지자기 폭풍은 2003년 이래 가장 강력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자기 폭풍은 G1에서 G5까지 5단계로 나뉘는데 숫자가 높을수록 규모가 크다. 영국에선 최근 500년간 기록된 것 중 가장 극심하고 오래 지속된 폭풍으로 기록됐다.

영국지질조사국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활용하면 전력망에서 위험이 높은 지역이나 변압기를 식별해낼 수 있다”며 “지자기 폭풍 중에 이러한 지역이 변형되어 변압기가 타는 것을 막고 더 넓은 전력망의 손실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EGU24(2024), https://doi.org/10.5194/egusphere-egu24-9684

Space Weather(2021), DOI: https://doi.org/10.1029/2021SW0027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