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9일 중소벤처기업부는 ‘2024년 모태펀드 1차 정시출자’ 사업 펀드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이 중에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 우수 기업에 투자하는 2개 펀드도 있었다. 기술 분야 투자의 강자로 불리던 SBI인베스트먼트와 함께 세마인베스트먼트도 선정됐다. 벤처투자업계에서는 세마인베스트먼트가 여러 경쟁자를 제치고 모태펀드 소부장 분야 GP(위탁운용사)에 선정된 것을 놓고 ‘이변’이라고 봤다. 그동안 베일에 쌓여 있던 세마인베스트먼트가 존재감을 보여준 셈이다.

세마인베스트먼트는 과학기술인공제회(과기공)의 자회사다. 과기공은 투자자산이 12조 3000억원에 달하는 대형 공제회다. 과학기술인들의 노후 자금을 모아서 운용하고 있다. 공제회의 자금을 운용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가 벤처투자다. 일반적인 공제회는 외부의 벤처캐피탈(VC)에 투자를 맡기지만, 과기공은 자회사인 세마인베스트먼트를 통해 벤처투자를 하고 있다.

황치연 세마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지난 12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딥테크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경험과 노하우 덕분에 모태펀드 소부장 분야 GP에 선정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이종현 기자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사무실에서 만난 황치연 세마인베스트먼트 대표는 “다른 VC에 비해 규모가 크지 않지만 과기공 자회사인 만큼 딥테크 기업의 기술을 평가하고 투자하는 데는 누구보다 자신있다”고 말했다. 그는 “딥테크 분야에 중점적으로 투자했는데, 투자 기업들을 살펴보면 절반 이상이 소부장 분야의 기업들이었다”며 “한국 산업의 특성상 소부장 기업이 곧 딥테크 기업”이라고 했다.

세마인베스트먼트는 공공기술사업화조합(펀드) 2개를 포함해 전부 6개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전체 펀드 약정 금액은 1580억원 정도다. 주로 바이오·자율주행·로봇·반도체·인공지능(AI)·우주 등 딥테크 분야 기업에 투자한다. 황 대표는 대표적인 투자 기업으로 헬스케어 기업인 지투이와 소프트웨어 기업인 페르세우스를 꼽았다.

지투이는 인슐린 자동 주입기와 관리 플랫폼을 개발해 국내 120여 당뇨 전문 진료기관에 제공하고 있다. 2025년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대표적인 헬스케어 딥테크 기업이다. 페르세우스도 하나의 하드웨어에서 여러 운영체제(OS)를 동시에 실행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자동차 산업에서 이 기술에 관심을 보이면서 기업 가치가 커지고 있다.

황 대표는 이런 딥테크 기업을 발굴할 수 있는 비결로 과기공과의 협업을 꼽았다. 그는 “기업이 가지고 있는 원천 기술이 실제로 시장에서 사업화까지 가능한 기술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며 “세마인베스트먼트가 투자를 검토할 때 과기공의 전문인력이 도움을 주기도 하면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고 말했다.

딥테크 분야에 주력하는 전문 투자 심사 인력을 둔 것도 세마인베스트먼트의 강점이다. 안욱 투자1본부장은 삼일회계법인 출신으로 우리프라이빗에쿼티와 한화인베스트먼트를 거쳤다. 정세홍 투자2본부장은 SK CVC와 송현인베스트먼트 등에서 바이오와 딥테크 투자를 했고, 이철제 이사는 오리엔트 바이오, 한양대 기술지주 등에서 신기술 사업화 투자를 담당했다.

황 대표는 “공공기술사업화펀드에서 투자한 기업들이 2025년, 2026년부터 상장을 앞두고 있다”며 “투자금을 회수하면 세마인베스트먼트도 규모를 키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소부장 모태펀드 GP 선정을 계기로 벤처투자업계에서 세마인베스트먼트의 입지를 넓혀나가겠다는 계획이다.

황 대표는 세마인베스트먼트의 벤처투자가 과학기술 생태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딥테크 스타트업의 대표나 직원들은 대부분 과학기술 분야 종사자여서 과기공 회원인 경우가 많다. 과학기술인들이 과기공에 낸 자금이 벤처투자의 형태로 같은 회원들이 있는 딥테크 기업에 수혈되는 셈이다. 나중에 성공적인 투자 사례를 만들면 다시 투자금이 몇 배로 불어서 과학기술인의 노후 자금을 풍성하게 만드는 선순환으로 이어진다.

황 대표는 “딥테크 분야에 오랫동안 투자를 하면서 내실 있게 운영해온 게 우리의 장점”이라며 “소부장 모태펀드 GP에 선정된 만큼 심사역도 보강하면서 앞으로도 내실 있게 운용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