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항공우주국(NASA)의 달정찰위성이 지하 동굴을 레이더로 관측하는 모습의 상상도./NASA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NGC)이 2016년 방영한 과학(SF) TV 시리즈 ‘마스(Mars)’는 2033년 화성에 도착한 우주인들의 정착 과정을 그렸다. 우주인들은 천신만고 끝에 용암 동굴을 찾아 그 안에 첫 거주시설을 짓는다.

이탈리아 과학자들이 드라마처럼 달에 도착한 우주인들이 거주할 지하 동굴의 입구를 찾았다. 과학자들은 최소 100m 깊이의 동굴은 인간이 영구 기지를 건설하기에 이상적인 장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방사선, 운석 막아주고 내부 온도 안정적

이탈리아 트렌토대의 로렌조 브루조네(Lorenzo Bruzzone) 교수 연구진은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달정찰위성(LRO)이 보내온 레이더 관측 자료를 분석해 ‘고요의 바다(Mare Tranquilitatis)’ 지역에서 지하 용암 동굴로 이어지는 입구를 확인했다”고 16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천문학’에 발표했다. 브루조네 교수는 “달 지하에 동굴이 있다는 것은 50년 동안 이론으로 제기됐지만 실제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트렌토대 연구진은 2010년 나사의 달정찰위성이 레이더로 고요의 바다에 있는 구덩이를 관측한 자료를 분석했다. 고요의 바다는 1969년 아폴로 11호 우주인들이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곳이기도 하다.

연구진은 레이더 관측 자료를 토대로 시뮬레이션(가상실험)을 하면서 지구의 용암 동굴과 비교했다. 그 결과 고요의 바다에 있는 구덩이는 지하 130m 이상 깊이에 있는 대형 동굴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동굴 입구를 찾은 셈이다.

지하 동굴은 폭이 45m, 길이는 최소 30m로 보이지만 이보다 더 클 수도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은 이 동굴이 지구의 영암 동굴처럼 과거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지나가면서 남긴 공간이라고 추정했다.

이탈리아 과학자들은 위성의 레이더 관측 자료를 토대로 지하 130m 깊이에 폭 45m, 길이 30m 규모의 동굴이 있다고 추정했다./네이처 천문학

트렌토대 연구진은 이번에 발견한 지하 동굴은 달의 진화를 보여줄 수 있다고 밝혔다. 논문 공동 교신저자인 레오나르도 카레르(Leonardo Carrer) 교수는 “표면 환경에 의해 변형되지 않은 달 동굴 암석을 분석하면 달 화산 활동의 연대와 기간, 달 지각 바로 밑에 있는 맨틀의 실제 구성과 같은 주요 과학적 질문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달은 대기가 없어 표면에는 우주에서 날아오는 운석에 부딪힌 충돌구들이 가득하다. 또 지구보다 150배나 강한 방사선에 그대로 노출된다. 반면 지하 동굴은 표면 토양이 이런 위험을 막아줄 수 있다. 온도도 달 표면은 낮에 섭씨 127도까지 올라갔다가 밤에는 영하 173도까지 떨어지지만, 동굴은 내부 온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반세기 만에 유인(有人) 우주탐사에 나선 인류가 달 기지 후보로 동굴을 찾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달 기지 대비해 지구 동굴서 훈련

나사는 1972년 아폴로 17호 이래 중단됐던 유인 달 탐사를 아르테미스(Artemis) 프로그램으로 재개했다. 2026년까지 우주인 두 명을 달에 착륙시킬 계획이다. 스페이스X를 세운 일론 머스크는 화성 이주도 추진하고 있다. 모두 과거와 달리 장기간 우주인이 거주할 시설을 세우기로 했다. 그에 대비해 달과 화성의 지하 동굴을 찾고, 탐사 훈련도 하고 있다.

이탈리아 파도바대·볼로냐대 공동 연구진은 2017년 라트비아 리가에서 열린 ‘유럽행성과학대회’에서 지구와 달, 화성의 용암 동굴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위성 관측 정보를 토대로 지구의 용암 동굴은 폭이 최대 30m 정도이지만, 달에는 폭 1㎞의 동굴이 수백㎞에 걸쳐 이어져 있다고 밝혔다. 화성의 동굴은 폭이 250m 정도로 추정됐다. 파도바대의 리카르도 포조본 박사는 “화성 동굴은 우주인 거주시설들이 들어선 거리를 세울 규모이고, 달에는 마을 전체가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미 항공우주국이 발견한 달의 구덩이. 지하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이다./NASA

나사는 달과 화성의 유인 기지 건설에 대비해 지구의 용암 동굴에서 로봇을 훈련하고 있다. 나사 제트추진연구소는 2021년 미국지구물리학회 연례 학술대회에서 바퀴 달린 탐사 로버(이동형 로봇)를 대신해 달과 화성의 거친 지형과 동굴 등을 탐험할 로봇개를 공개했다.

이 로봇은 현대자동차 계열사인 미국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개발한 네 발 이동 로봇 스폿(Spot)을 화성 탐사용으로 개조한 것이다. 자율(Autonomous) 보행이 가능하다고 ‘Au-스폿’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나사 과학자들은 스폿이 장애물을 피하고 적합한 길을 찾아 장차 화성 우주 기지를 세울 지하 동굴에 대한 가상 지도를 만들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동안 화성 탐사는 오퍼튜니티, 큐리오시티 같은 로버가 맡았다. 하지만 바퀴로 움직이는 로버는 평평한 땅만 이동할 수 있었다. 과학자들이 탐사하려고 하는 지형은 대부분 거칠고 지표면 아래에 있다. 나사 과학자들은 스폿은 지하로 걸어 내려가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어 화성의 거친 지형을 탐사하는 데 안성맞춤이라고 밝혔다.

Au-스폿은 다양한 센서로 주변을 탐색할 수 있다. 레이저 반사파로 거리와 장애물을 알아내는 라이다를 장착했으며, 광학카메라와 적외선카메라, 동작 센서까지 갖춰 주변 지형에 대한 3D(입체) 지도를 만들 수 있다. 또한 인공지능(AI) 학습기능을 갖춰 장애물과 과학연구 대상이 되는 지형을 식별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통신 모듈은 지하를 탐사하는 동안에도 데이터를 송신할 수 있다.

로봇개 스폿이 화성 지형과 비슷한 지하 동굴을 탐색하는 모습./NASA

트렌토대의 카레르 교수는 “지구의 생명체는 동굴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달에서도 인간이 동굴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앞으로 인공위성에 있는 지상 투과 레이더나 카메라 또는 로봇을 사용해 동굴의 입체 지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선사시대 인류도 과거 사막의 용암 동굴에서 수천 년 동안 안식처를 마련한 것으로 밝혀졌다. 독일 막스 플랑크 지구인류학연구소의 휴 그로컷(Huw Groucutt) 박사와 호주 그리피스대의 매튜 스튜어트(Mathew Stewart) 박사 연구진은 지난 4월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사우디아라비아 북부의 사막에서 처음으로 용암 동굴 안에서 7000년 전부터 인간이 거주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Nature Astronomy(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50-024-02302-y

PLoS One(2024), DOI: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299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