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23명이 숨졌다. 공장에 있던 리튬 배터리 1개에서 시작한 불이 주변 배터리에 붙어 확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리튬 배터리에 불이 나면 순식간에 온도가 오르면서 불이 더 강해지는 ‘열폭주’ 현상이 생겨 화재 진압도 쉽지 않았다.
이전부터 리튬 배터리의 화재 위험성은 꾸준히 지적돼 왔다. 이번 화재의 원인인 리튬 일차전지뿐 아니라 전기차에 쓰이는 리튬 이차전지도 마찬가지다. 일차전지는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전지, 이차전지는 충전이 가능한 재사용 전지를 말한다. 특히 전기차 화재는 연쇄 폭발로 이어질 수 있어 리튬 이차전지의 화재 위험을 줄이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첨가제로 전해질과 분리막 안전성 높여
리튬 배터리는 양극과 음극, 전해질, 분리막으로 구성된다. 액체 전해질에서 리튬 이온이 양극과 음극 사이를 오가면서 전류가 발생한다. 분리막은 양극과 음극이 닿지 않도록 막는 소재로, 리튬 이온은 분리막의 작은 기공을 지나간다.
리튬 배터리 화재를 막기 위해 전해질에 불에 잘 타지 않는 소재를 추가하는 방법이 있다. 지난해 송현곤 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교수와 한국화학연구연,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공동 연구진은 전해질에 미량의 고분자를 첨가해 불에 타지 않는 불연성 반고체 전해질을 개발했다.
이전에도 난연 첨가제를 사용하거나 끓는점이 높은 용매를 사용해 불연성 전해질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전해질의 이온 전도도가 급격히 떨어져 성능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송 교수 연구진이 개발한 반고체 전해질은 불연성이면서도 기존 액체 전해질보다 리튬 이온 전도도가 33% 높았다. 고분자가 불안정한 전해질에서 나타나는 불필요한 반응도 없애 수명을 110% 높였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창업기업인 내일테크놀로지는 한국에너지공대, 충남대와 함께 질화붕소 나노튜브를 활용한 전해질 첨가제를 개발했다. 질화붕소 나노튜브는 탄소 원자들이 벌집 모양으로 연결된 다발인 탄소나노튜브와 비슷한 열전도를 보이면서도 900도 이상의 고온에서도 안정성이 높다. 연구진은 질화붕소 나노튜브를 분리막에 코팅해 성능을 개선했다.
특히 원통형 구조의 질화붕소나노튜브를 통해 열 배출도 빨라졌다. 배터리 온도가 높아지면 분리막이 수축하면서 양극과 음극이 닿아 내부 단락(쇼트)이 일어난다. 연구진은 질화붕소나노튜브 첨가제가 분리막의 열 수축률을 50% 이상 낮춰 폭발 가능성도 낮아진다고 설명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분리막에 세라믹 입자를 코팅한 ‘안전성 강화 분리막(SRS)’을 개발하기도 했다. 세라믹 입자는 고분자 분리막이 수축하지 않도록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분리막은 주로 폴리올레핀 고분자 소재를 사용하는데, 이를 열에 강한 폴리아미드 소재로 바꾸는 방식도 있다.
◇화재 위험 낮은 고체 전해질
전해질의 물성을 아예 바꾸는 방식도 있다. 전고체 전지는 액체 대신 고체 형태의 전해질을 사용하는 리튬 배터리다. 기존 배터리에 쓰는 액체 유기전해질은 불이 쉽게 붙는다는 단점이 있다. 전기차 화재를 진압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이유다. 전고체 전지는 기존 배터리의 화재 위험성을 낮출 차세대 전지로 꼽힌다.
다만 전고체 전지는 아직 충전 용량이 작고 생산 단가가 액체 전해질보다 100배 비싸다. 하윤철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전고체전지의 생산 비용을 줄이기 위해 황화물계 고체전해질을 저비용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황화물계 전고체전지는 이온 전도도가 높고 가공이 쉬우면서도 대형 기기에 적용할 수 있다.
하 연구원 연구진은 순도가 낮은 원료로 고성능의 전해질을 생산할 수 있는 ‘특수습식합성법’과 가격이 비싼 황화리튬을 사용하지 않고 고체 전해질을 만드는 ‘공침법’을 자체 개발했다. 해당 기술들은 2023년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 중에서도 최우수 기술로 선정됐다. 고체 전해질을 저가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전고체 이차전지 상용화를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지에서 화재 확산 막고, 리튬 대체도
전해질, 분리막과 같은 전지 소재뿐 아니라 모듈, 팩 단위에서 화재 위험을 줄이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모듈은 배터리 셀을 여러 개 묶은 형태이고, 모듈들이 모여 배터리 팩을 이룬다. 김도엽 한국화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셀 하나에 문제가 생겨 과열되더라도 팩 내에서 열이 퍼지지 않도록 방열 소재를 넣는 연구도 있다”며 “전기차같이 규모가 큰 시스템에서는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배터리 매니지먼트 시스템(BMS)을 탑재한다”고 설명했다.
전기차 수요가 꾸준한 만큼 관련 연구는 더 활발해질 전망이다. 김 책임연구원은 “전기차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해서 전지의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정된 공간에 에너지를 많이 넣으면 위험성이 좀 더 커질 수 있어 화재 방지 연구가 활발하다”고 했다.
아예 리튬을 사용하지 않는 배터리도 나온다. 물 기반의 전해질과 아연 이온으로 구성된 ‘수계아연이온전지’는 물을 사용해 발화 위험이 없다. 원재료인 아연의 값도 저렴해 안정성이 높은 차세대 이차전지로 꼽힌다.
김찬훈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과 이용민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교수 연구진은 수계아연이온전지에 들어가는 ‘후막 양극’을 개발했다. 후막 양극은 전자들의 이동 통로 역할을 하는 활물질이 두껍게 코팅된 양극으로 용량이 낮아 상용화에 어려움이 있었다. 연구진은 전자의 이동을 촉진하는 ‘도전재’와 활물질을 붙이는 접착제를 개질해 고온에서도 용량을 높게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참고 자료
ACS Energy Letters(2023), DOI: https://doi.org/10.1021/acsenergylett.3c01128
ACS Materials Letters(2023), DOI: https://doi.org/10.1021/acsmaterialslett.3c00538
Nano-Micro Letters(2023), DOI: https://doi.org/10.1007/s40820-023-01072-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