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물질인 디옥시리보핵산(DNA) 일부를 잘라내고 다른 부분으로 대체할 수 있는 유전자 편집 기술이 나왔다. 기존에도 크리스퍼(CRISPR) 유전자가위처럼 DNA를 편집하는 기술이 있었지만 엉뚱한 부분을 자르거나 잘라낸 DNA 조각이 부작용을 일으키는 문제가 있었다. 이번 기술은 대규모 유전자 편집도 가능하고 부작용 우려도 적어 기존 유전자 편집 방식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아크 연구소와 일본 도쿄대 공동 연구진은 “DNA를 재조합, 재배열할 수 있는 ‘브릿지(bridge) 재조합’ 메커니즘을 발견했다”고 27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이날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두 편의 논문으로 공개됐다.
연구진은 미생물 유전체에서 발견된 ‘점핑 유전자(jumping gene)’인 IS110에서 영감을 받았다. 점핑 유전자는 이름처럼 한 염색체에서 다른 염색체로 이동한다. 염색체는 유전자가 포함된 DNA 가닥들이 실패 역할을 하는 단백질에 감겨 있는 형태다. 95%가 물이어서 잘 보이지 않지만, 염색은 잘 된다고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점핑 유전자는 많은 생물에서 관찰된다. 인간 염색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패트릭 쉬 아크 연구소 공동 설립자 연구진은 점핑 유전자인 IS110이 원래 있던 위치에서 이동하기 위해 DNA에서 자신을 잘라낼 때 ‘브릿지 리보핵산(RNA)’를 만드는 것을 발견했다. RNA는 DNA의 유전 정보를 복사해 단백질을 합성하거나 짧은 가닥 형태로 유전자 기능을 조절하는 물질이다.
브릿지 RNA는 이름처럼 DNA 두 가닥 사이에 다리를 놓듯 연결됐다. 브릿지 RNA는 머리핀 모양의 한 쪽 루프(loop)는 IS110과 결합하고 다른 루프는 IS110이 옮겨갈 표적 DNA에 결합했다. 연구진은 브릿지 RNA의 루프를 조작하면 DNA에서 잘라낼 부분과 여기에 삽입할 새로운 DNA를 이을 수 있다고 봤다.
기존 유전자 편집은 일종의 가위 역할을 하는 재조합 효소로 DNA의 특정 부분을 잘라내고, 다른 곳에서 잘라낸 DNA 조각을 그 자리에 집어넣었다. 그러려면 우선 편집할 DNA 양쪽에 효소를 붙여 잘라냈다. 이곳을 대체할 DNA 조각도 같은 방식으로 다른 DNA 가닥에 효소 두 개를 붙여 잘라낸다. 잘라낼 DNA 부분을 정확히 인식할 효소를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로 인해 엉뚱한 곳을 잘라내거나 붙이는 일도 일어난다.
이번 연구진은 브릿지 RNA에 재조합 효소를 결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점핑 유전자가 하는 방식처럼 특정 DNA에 결합하는 브릿지 RNA만 설계하면 정확하게 편집할 수 있다. RNA의 루프는 재조합 효소보다 더 쉽게 정보를 바꿀 수 있다. 이제 효소 단백질은 RNA가 붙은 위치에서 DNA를 잘라내면 된다.
연구진은 “브릿지 RNA는 점핑 유전자가 자신을 원하는 곳에 삽입하는 역할만 했지만, 이번에는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자르거나 대체하는 데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발전시켰다”며 “브릿지 RNA의 루프 2개는 조정하기 쉬워 다양한 DNA를 인식하고 결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브릿지 RNA는 DNA 두 가닥을 동시에 인식하는 최초의 이중특이적 효소다.
이번 복합체가 유전체 위치를 찾는 정확도는 94% 이상으로 나타났다. 대장균의 유전체에 원하는 유전자를 삽입하는 효율은 60% 이상이었다. 니시마스 히로시 일본 도쿄대 교수 연구진은 저온전자현미경을 사용해 DNA 두 가닥에 결합한 재조합 효소-브릿지 RNA 복합체의 분자 구조를 확인하고 작용 메커니즘을 확인했다.
기존 유전자 편집 기술은 절단된 유전자 조각이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브릿지 재조합 메커니즘은 DNA 두 가닥을 잘라 섞기 때문에 남는 DNA 조각이 생기지 않는다. 연구진은 “유전체 편집 방법의 한계를 일부 해결했다”며 “유전체 설계에 획기적인 발전의 문을 열어줄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포유류 세포를 포함한 다양한 종의 세포에서 효율과 안전성을 확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나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RNA 간섭(RNAi)’을 넘어설 것”이라며 “텍스트 문서를 작성, 편집하는 워드 프로세서처럼 살아있는 생물의 DNA를 수정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라고 덧붙였다.
유전자 가위 기술을 연구하는 허원도 KAIST 생명과학과 교수는 “대장균에서 효율을 확인했지만 포유류 세포에서도 작용할 가능성이 있어 기대된다”면서도 “브릿지 RNA를 활용하더라도 부작용 우려는 사라지지 않는다. 브릿지 RNA가 인식하는 염기 수가 20개 내외로 길지 않아 특정 위치를 찾는 특이성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참고 자료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4-07552-4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4-075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