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 마르셀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냄새를 맡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처럼 특정한 냄새가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현상을 프루스트 현상 또는 마들렌 효과라고 한다.
프루스트 현상은 인간의 뇌가 냄새와 기억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보여준다. 2021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기억력과 후각이 뇌의 같은 영역에 처리된다는 연구 결과를 실었다. 냄새를 맡으면 코에 있는 신경세포가 뇌로 신호를 보내는데, 신호를 받는 뇌 부위가 기억과 연관되어 있다는 내용이다. 국내 연구진이 이러한 인간의 후각 시스템을 닮은 인공 후각을 개발했다.
오준학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와 박태현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공동 연구진은 질병 바이오마커를 감지하는 차세대 인공 후각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24일 밝혔다. 바이오마커는 질병의 진행상황과 약물 효과를 알아볼 수 있는 생체 지표를 말한다. 연구 결과는 이날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공개됐다.
지금까지 사람처럼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인공 코’는 많이 개발됐다. 하지만 단일 물질이나 구별이 쉬운 물질들의 혼합물을 구별하는 데 그쳐 실제 후각과는 차이가 있었다. 실제 사람의 후각은 코에 있는 수용체 400여개로 각각 냄새 물질을 나눠 감지한다. 그리고 수용체와 물질이 결합하는 형태를 파악해 기억한다.
연구진은 사람의 코를 닮은 인공 후각를 개발하기 위해 먼저 콧속에서 냄새 물질을 감지하는 수용체 단백질 3종을 만들었다. 박 교수는 “냄새에 따라 반응하는 수용체가 다르다”며 “냄새 물질의 농도에 따라 수용체에서 나오는 신호의 세기도 바뀐다”고 설명했다.
오준학 교수는 수용체를 기판에 고르게 설치해 냄새 물질을 감지하는 센서를 개발했다. 그리고 수용체의 신호를 학습하고 기억하는 인공 신경망을 만들었다. 이를 인간의 뇌 구조를 모방한 ‘뉴로모픽 장치’라고 한다. 특히 신경망은 다양한 물질이 수용체에 결합하는 형태를 학습해 미지의 냄새가 무엇인지 추론할 수도 있다. 냄새 물질들이 수용체와 결합하는 형태를 기억했다가 새로 접하는 물질과 대조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렇게 개발한 인공 후각 시스템으로 위암의 바이오마커로 쓰이는 단사슬 지방산을 식별해 냈다. 지방산을 이루는 탄소 사슬의 길이에 따라 분자를 구별하는 데도 성공했다. 연구진은 “감지 정확도는 90% 이상으로 단사슬 지방산을 포함해 알코올이나 벤젠계 화합물을 감지할 수도 있다”며 “후각을 상실한 환자를 위해 냄새 물질을 파악하거나 질병을 진단하는 데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냄새 수용체의 개수를 늘려가며 인공 후각의 성능을 개선할 계획이다. 박 교수는 “수용체 개수를 늘리면 인간 후각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며 “인공 후각을 휴대전화와 같은 전자 기기로 상용화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밀했다. 오 교수는 “수용체를 늘리면 데이터가 많아지는 만큼 빅데이터(대용량 정보)를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더하고 싶다”며 “클로로포름이나 톨루엔 같은 새집증후군 물질을 감시하는 환경 모니터링이나 건강을 살피는 헬스케어 쪽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 자료
Science Advances(2024), DOI: https://doi.org/10.1126/sciadv.adl28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