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스타트업 창업자와 정부 관계자들이 모여 이공계 활성화 방안을 의논했다. 이들은 이공계 학생이 의대 대신 이공계로 진로를 결정하려면 좋은 롤모델(본보기)이 있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우수한 인재의 한국 복귀를 유도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는 16일 경기 성남 리벨리온 본사에서 열린 ‘이공계 활성화 TF 4차 회의’에서 “과거 한국의 성장기에는 해외 인재를 복귀시키기 위한 세금 혜택도 있었다”며 “1인당 1억원 규모의 리로케이션(이전) 패키지를 정부에서 지원해준다면 기술 스타트업들의 인재 영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로케이션 패키지는 해외에서 활동하던 우수 인력이 한국으로 돌아오면 세제 혜택나 정주 지원 등 정부 차원에서 초기 정착을 돕는 제도를 말한다.
리벨리온은 인공지능(AI) 팹리스(반도체 설계) 스타트업이다. 대규모 연산이 필요한 AI에 적합한 반도체를 설계할 수 있는 기술력은 세계적으로 인정 받고 있다. 전체적인 성능은 엔비디아를 뛰어넘지는 못하지만 ‘추론’ 성능만큼은 엔비디아 제품에 비해 전력 소모량이 최대 5분의 1로 강점을 갖고 있다. 창업 3년 만에 누적 투자금 2800억원을 달성하며 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스타트업 중 한 곳으로 꼽힌다.
박 대표는 “리벨리온은 많은 투자를 유치하며 해외 인력을 영입하는 데 큰 문제가 없으나 작은 스타트업들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우수한 인력이 한국으로 돌아와 사업에서 좋은 사례를 남겨 준다면 국내 학생들도 의대 만큼이나 이공계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니어스랩의 창업자인 최재혁 대표도 해외 인재 유치를 위한 정부 지원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니어스랩은 포브스 아시아가 주목해야 할 100대 기업으로 선정한 바 있다. 최 대표는 “단기적인 장학금을 많이 준다고 해서 이공계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는 없다”며 “스타트업을 통해 성공하는 연구자들의 롤모델을 많이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산업계의 인재 유치 지원 요청에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다만 지원 규모와 효과에 대해서는 면밀한 검토 후에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이창윤 과기정통부 1차관은 “실질적으로 기업에서 정부의 지원을 체감할 수 있다면 추진할 용의가 있다”며 “어느 수준으로 지원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1억원으로는 효과가 적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싱가포르, 대만, 중국은 해외에서 복귀하는 연구자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지만 한국은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곤 우수 인재가 돌아 올 유인 요인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장 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만큼 국내에서 인재를 육성하기보다는 발 빠르게 해외 인재를 영입해 따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