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회사와 식품 회사들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바이오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난치병 신약 개발에 활용되던 바이오 기술이 뷰티업계의 트렌드를 창출하고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추진하기 위해 적극 활용되고 있다.
지난 18~19일 경남 창원시에서 열린 ‘2024년 춘계학술대회’에서는 미생물 공장을 비롯한 바이오 기술로 차세대 먹거리를 발굴하는 기업들을 소개하는 특별 세션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화장품 회사인 아모레퍼시픽(090430)과 식품 기업 CJ제일제당(097950), 제약사인 GC녹십자(006280), 유바이오로직스(206650) 관계자들이 발표자로 나서 최근 전략적으로 개발 중인 첨단 생명공학 기술과 사업 추진 현황을 소개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소비자의 구매를 이끌 ‘뷰티 트렌드’를 형성하는 데 생명공학 기술이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박원석 아모레퍼시픽 상무는 이날 행사에서 “마이크로바이옴(미생물 군집체)과 오토파지(자가포식) 같은 후성 유전학이 주목을 받으면서 새로운 생물 공학적 발견들이 소비자를 설득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며 “선행 연구 조직을 두고 생명과학과 재료과학을 결합한 뷰티테크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피부 노화 방지에 뛰어난 히알루론산이 1980년대 초 미생물 발효로 처음 생산된 이후 레티놀, 펩타이드, 마이크로바이옴, 오토파지를 연구한 결과물이 화장품에 꾸준히 적용되고 있다. 생명공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뷰티업계에선 ‘바이오 화장품’이 승자의 조건이 됐다.
아모레퍼시픽은 녹차 유산균, 인삼 성분 같은 식물자원을 원료로 유용한 물질을 개발하는 ‘화이트 바이오’ 기술을 화장품 효능 개선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외부 환경 오염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안티폴루션’과 주름을 개선하는 ‘레티놀 안정화’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2008년부터는 제품 개발 과정에서 동물 실험을 없애고 오가노이드(미니 인공장기)와 인공 피부를 화장품의 안전성과 효능 검증에 활용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미생물의 유전자를 편집해 유용한 물질을 만드는 합성생물학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미생물인 효모 균주에서 그간 동물에서 얻어오던 인슐린이나 콜라겐, 가죽 같은 유용한 물질을 생산하는 스타트업이 전 세계적으로 크게 늘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최근 친환경 바람이 불고 있는 패션업계에선 이미 이렇게 생산된 비건 가죽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합성생물학 스타트업은 대부분 양산화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회사 규모가 아직 작아 균주를 개발하고 제품을 대량 생산할 시설을 확보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CJ제일제당은 최근 스타트업들이 개발한 균주로 신물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바이오 파운드리’를 개발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이 바이오 신약을 위탁개발생산(CDMO)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CJ제일제당은 유전자 정보를 인공지능(AI)에게 학습시켜 새로운 유용한 균주를 발굴하는 자동화 실험 시스템을 구축했다. 스타트업들은 도출된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공정을 설계하고 발효부터 정제까지 가상으로 모의 생산하는 시뮬레이션 실험을 진행할 수 있다.
김은지 CJ제일제당 바이오사업본부 파운드리팀장은 “CJ제일제당은 60년 발효 기술을 기반으로 그린 바이오부터 화이트 바이오, 레드 바이오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며 “세계 7개 국가에 정밀발효 공장 11곳을 운영하며 아미노산을 포함해 다양한 식품·화학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이제는 CDMO 사업에 착수한 만큼 생물공학 분야의 많은 연구자가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약을 개발하는 전통적인 바이오 기업들도 이날 세션에 참여해 현재 개발 중인 기술들을 소개했다. GC녹십자는 코로나19 백신의 돌파구를 마련한 메신저리보핵산(mRNA) 플랫폼을 소개했다. 유바이오로직스는 유니세프에 공급 중인 새 콜레라 백신을 중심으로 개발 현황을 소개했다.
민경호 유바이오로직스 부사장은 “폴리사카라이드(다당체) 미생물을 운반체로 하는 플랫폼을 이용해 주로 저개발국가에서 필요한 콜레라와 장티푸스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며 “미국 뉴욕타임스가 숨은 영웅으로 소개할 만큼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